[김순덕 칼럼]盧대통령의 사과를 듣고 싶다

  • 입력 2007년 12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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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엔 “부동산 말고 꿀릴 게 없다”고 했다. 한 달 전엔 “국민이 지금 몽둥이를 들고 청와대로 안 쫓아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언론이 전달한 것을 국민이 절반만 믿는다면 이 대통령은 쫓겨나야 되지만…참여정부 실패론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고도 했다.

아직도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가

그래서 정말이지, 인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궁금하다. 아직도 “내가 뭘 잘못했나? 뭐가 틀렸나?” 하고 따지고 싶은지. “나와 국민 사이에 언론들이 적절하게 이간질을 잘해 가지고” 국민이 몽둥이 대신 투표용지를 들고 쫓아와 범여권을 참패시켰다고 믿는지. 아니면 대통령은 21세기에 있는데 국민이 19세기에 있다고 한탄하면서 국민 계몽 정치학 집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지.

악취미여서가 아니다. 대선 뒤 무게중심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로 옮겨 간 것 같아 보이지만 그건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 판단일 뿐이다. 대통령은 아직도 임기가 두 달 이상 남은 ‘살아 있는 권력’이다. 대통령의 인식과 태도에 따라 앞으로 두 달이 차기 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당선자 확정 뒤 청와대에서 “인계인수와 함께 임기 마지막까지 국정에 소홀함이 없도록 책임을 다하겠다”고 발표한 논평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20일엔 “당선자의 국정철학과 이념이 다르므로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주요 정책들을 순조롭게 이양할 고려사항이 필요한 것 같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국민의 착각은 자유지만 대통령의 착각은 위험하다. 국민이 참여정부 정책들을 대대손손 잇고 싶었다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는 낙선하지도 않았다. 이번 대선은 국민이 경제를, 실용적 보수를, 이명박을 흔쾌히 선택했다고만 할 수 없다. 오히려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이고 더 정확하게는 노 대통령에 대한 응징이다. 패자는 정동영이 아니라 대통령 노무현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책을 했다는 기색은 아직 없다. 청와대는 되레 노무현 심판론에 극도의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은 늘 자신만 옳았던 사람이다. 국민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 아니면 적으로, 언론은 악으로 간주해 온 걸 모르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주엔 잘못을 자인했던 부동산정책에 대해 “부동산 값은 조금 올랐지만 금융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았으니 한국 정부가 제일 잘했다”고 자랑했다.

5년 전 ‘시민혁명’을 일으켜 ‘노짱’을 대통령으로 만든 지지자들까지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대철 신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정동영이 아니라 노무현이 대상이었다”고 했을 만큼, 국민은 대통령으로 인해 맺힌 게 너무나 많다. 제 백성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인 북한 김정일에겐 ‘유연한 협상가’라고 칭찬하면서 몇번씩 만회할 기회를 준 대한민국 국민에겐 너무도 모질게 대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를 수 있고, 선의의 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만 옳고 자신의 선의만 중요하다고 믿는 건 전체주의적 독재자나 다를 바 없다. 정 씨조차 자신이 부족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낙선 인사를 하는 판에 그 원인 제공자인 대통령이 침묵하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희망 뺏지 말기를

5년 전 ‘노짱’을 찍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의 눈물은 기억한다. 설령 표를 위한 전략이었대도 한때 국민은 노 대통령을 보며 희망을 가졌었다.

우리 사회엔 평등과 분배의 좌파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그 가치를 실현하려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상처를 입혀 미안하다”는 한마디쯤은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좌파의 가치는 물론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까지 송두리째 매도당하고 낙인찍히지 않는다.

남은 두 달을 막판 대못질로 지새우는 대통령을 보며 인간에 대한 희망까지 잃게 될까 두렵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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