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서로 겸허해야 할 盧와 李

  • 입력 2007년 12월 20일 02시 58분


코멘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세 번 직간접적으로 대결해 모두 이겼다.

첫 번째 대결은 1996년 15대 종로 국회의원 선거였다. 이 당선자는 이때 승리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는 2002년 6월 서울시장 선거 때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노 대통령은 이 당선자에 맞선 김민석 민주당 후보의 지지 연설을 열성적으로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이 당선자를 ‘비리가 많은 후보’라며 공격했지만 역시 이 당선자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대선은 이 당선자가 사실상 노 대통령과 세 번째 치른 대결이었다.

두 사람은 정치적 신념과 가치관은 달라도 공통점도 많다. 같은 경상도 출신으로 가난 때문에 상고(商高)에 갔지만 결국 큰 뜻을 이룬 인물이다. 이 당선자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서울시장으로 승승장구했다. 노 대통령은 대학은 다니지 않았지만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와 변호사를 거쳐 대통령이 됐다. 두 사람은 비주류 정치인으로 정상에 오른 점도 같다.

두 사람은 새로운 경쟁을 시작했다. 내년 2월 25일까지는 대통령과 당선자로, 그 후 5년은 전직과 현직 대통령으로 말이다. 다시 5년 뒤에는 모두 전직 대통령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과 이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정책에 대한 상호 비판을 많이 주고받았다. 하지만 인간적인 공격은 별로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둔 셈이다. 이 당선자는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는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제 도입 때 노 대통령의 신세를 졌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새 정부의 성패는 내년 2월 25일까지 67일 동안 두 사람이 만들어 갈 관계에 크게 영향 받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정권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수인계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정권 인수인계가 원만했던 대통령들의 치적이 대체로 좋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면에 최악의 미국 대통령 3명에 단골로 들어가는 제임스 뷰캐넌 전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의 인수인계 과정이 최악이었다. 그것이 남북전쟁의 원인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노 대통령은 평소 “집권 마지막 시간까지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겠다”고 말해 왔다. 기자실에 계속 대못질을 한 것도 그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법칙은 노 대통령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최진 고려대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은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는 순간부터 모든 힘은 당선자에게 집중되는 게 권력의 법칙”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당선자를 새로운 권력으로 인정하고 업무 권한을 자연스럽게 이양하고 물러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퇴임하는 날까지 ‘살아 있는 권력’이라며 오기를 부리면 두 사람 사이는 삐걱대고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 노 대통령은 BBK 특검에 대한 ‘혹시나 하는’ 미련도 버려야 한다.

이 당선자도 임기 말 대통령이 퇴임 후를 불안해하는 당연한 심리를 배려하고 승자의 아량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두려움을 느끼면 국정수행에 필요한 민감한 자료나 정보를 폐기하거나 넘겨주지 않을 수도 있다. 점령군 같은 행동이나 오만한 태도는 금물이다.

“당선자는 대통령에게 아무리 겸손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최 소장의 충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