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상준]한총련의 ‘직접 타격’

  • 입력 2007년 11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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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 대학생 50여 명이 모여들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인 이들은 거리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총련의 ‘대선 30일 총력운동’의 첫 행사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17대 대선에서 낡은 부패정치를 청산하고 통일국가를 수립할 대통령을 뽑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총련이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총력운동 투쟁지침’에 따르면 한총련은 이날부터 대선 당일까지 명동성당을 포함해 전국의 주요 대학에 농성장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지침에는 “특정 후보의 선거사무실 등에 직접 타격을 가한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1시간 반에 걸쳐 선전전을 겸한 기자회견을 마친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곧바로 농성장으로 쓸 천막을 세우기 위해 성당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성당 입구는 전날 성당 측의 시설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 1개 중대가 막고 있었다. 성당 내 농성 불가 방침을 통보받은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경찰과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농성을 포기했다.

이날 명동성당에서 만난 한 시민은 “대선을 염두에 둔 일방적인 정치 행동을 위해 명동성당을 내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명동성당 진입에 실패한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이날 오후 6시 반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앞에 다시 모였다. 손에 촛불을 든 이들은 ‘종전선언 이후 미군 없는 평화체제 건설 필요’, ‘대통령 후보 이래도 되나’ 등의 주장을 담은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 줬다.

하지만 추운 날씨로 잔뜩 몸을 웅크린 시민들은 총총걸음으로 퇴근길을 재촉하며 이들을 외면했다.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총력운동’을 시작한 첫날 한총련은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명동성당은 물론 5년 전 촛불시위를 벌였던 거리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한총련이 대선을 염두에 두고 벌일 ‘시국농성’ 장소로 명동성당을 선택한 것은 결국 패착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주장과 행동이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같은 무게와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이날 하루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한총련 학생들이 이날의 경험을 되새겨 ‘직접 타격’같은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한상준 사회부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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