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수능보다 중요한 것

  • 입력 2007년 11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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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28) 씨는 대학 영문과를 나왔지만 고등학교 때는 이과였다. 그가 이과를 택한 것은 당시 과외교사가 “남자가 무슨 문과냐, 당연히 이과를 가야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보가드로의 법칙’ ‘플레밍의 법칙’ 등 수많은 법칙에 질려 대학에 떨어진 뒤 재수할 때는 문과로 바꿨다. 지금은 패션회사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문모(30) 씨는 K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좀 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부모님과 본인의 바람 때문에 S대 법대로 편입했다. 법학이 영 맞지 않았던 그는 지옥 같은 대학 생활을 보냈으며 고시에도 번번이 떨어졌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십수 년을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살았건만 중요한 고비에서 선택을 잘못해 고생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젊었을 때도 그랬다. 정말로 중요한 일을 우리는 그다지도 쉽게, 아무것도 모른 채 결정했다. 진학하는 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취업 전망은 어떤지, 세상은 어떻게 변하는지 자세히 모른 채 잘나가는 친척이 “요즘 뭐가 뜬다더라” 하는 몇 마디에 진로를 선택했다. 심지어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할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점수에 맞춰 막판 눈치작전으로 대학과 학과를 골랐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는 복불복(福不福)이다. 운 좋으면 적성에도 맞고 시대흐름과 잘 맞아 돈과 사회적 지위가 따라온다. 반대로 운이 나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내가 저 친구보다 공부도 잘했는데 지금은 이게 뭔가” 하고 한탄하는 신세가 된다.

다시 입시철이다. 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전후해 전국의 절과 교회에는 부모들의 기도가 넘쳐흐른다. 올해는 수능 등급제가 처음 실시돼 대학 지원에서 눈치작전이 심할 것이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고 해마다 반복되는 모습이다.

몇 년간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시간이나 대입 지원 작전에 들이는 노력 가운데 조금이라도 미래의 사회 변화와 아이의 적성을 연구하는 데 사용한다면 인생의 결과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학원을 가는 데 쏟는 노력의 10분의 1이라도 아이가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는 데, 그래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 사용해 보면 어떨까.

학원에 지나치게 의존해 부모의 역할을 방기하는 건 아닌지 반성할 필요도 있다. 초중학생이 배우는 과목은 웬만한 교육을 받은 부모라면 직접 도와줄 수 있는 내용이다. 하루 30분만 함께하면 될 것을,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 종합반에 보내 밤늦게까지 아이를 잡는다면 공부가 싫어지는 게 당연하다.

부모는 아이의 로드매니저가 아니라 최고경영자(CEO)가 돼야 한다. 학원 스케줄을 짜고 공부를 감독하는 것만이 부모의 역할은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목표를 발견하고 그 길을 향해 노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 풍부한 정보와 경험을 제공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

예전 부모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도 바빴기 때문에 인생의 멘터(mentor)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요즘은 많은 부모가 고등교육을 받았고 교양도 풍부하다. 그런데도 ‘전략 없는 교육’으로 부모의 인생을 되풀이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신연수 특집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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