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言格높은 대선후보 찾습니다

  • 입력 200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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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寸鐵殺人). 말 한마디로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상대방을 제압해야 하는 선거의 계절이다. 한 표가 아쉬운 정치판에서 세 치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심연의 나락으로 빨려 든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도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특히 선거판에서는 그냥 그것으로 끝장이다. 정동영 후보의 노인 폄훼, 이명박 후보의 여성 폄훼, 이회창 후보 보좌역의 젊은층 폄훼, 이 모든 말이 본인의 진의와 관계없이 바로 표 떨어지는 소리로 연결된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하지 않는가.

이제 말이 권력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 자행된 고문에 의한 물리적 폭력은 민주화시대에 이르러 말에 의한 정신적 폭력으로 치환된다. 특히 권력을 지향하는 이들의 말은 더욱 폭력적이다.

영상매체의 발전과 인터넷의 보편화에 따라 짧은 순간에 상대방에게 최대한 각인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하여 말은 더욱 거칠고 세속화된다. 동시대의 지성을 대변해야 하는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에서조차 섬뜩한 표현이 여과 없이 표출된다. 그래서야 어떻게 어린 학생이 논술자료로 활용할 수 있겠는가.

똑같은 말이라도 언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또 동일한 사람에게 어떤 칭호를 붙이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발언자의 인식이 스며들고, 듣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선입견을 갖게 한다. 예컨대 박정희 씨, 박정희 장군,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이름 다음에 어떤 칭호를 붙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이미지가 사뭇 달라진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박사 칭호를 통해 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빌딩에 성공하자 박사 열풍이 판을 친다. 그에 대한 비아냥거림은 마침내 민초의 뜻이 투영되는 대중음악 가사에까지 등장한다. ‘대학을 나와 유학을 하고 박사호 있어야만 남자인가요?’

얼마 전 국립국어원이 신조어자료집에 ‘놈현스럽다’를 넣었다가 청와대의 질책을 받은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놈현스럽다는 말의 어감 자체가 별로 좋지 않다. 놈현이 대통령의 이름을 축약한 것이기는 하지만 ‘놈’자가 갖는 비하적인 의미가 ‘스럽다’와 연계되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한다. 사실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으로는 노 대통령을 당해 낼 사람이 없다. 그놈의 헌법, 대못질, 땅따먹기 등등.

강금실 변호사의 법무부 장관 발탁에 반발하는 검사들을 상대로 대통령은 평검사와의 대화를 마련한 바 있다. 대통령을 향한 젊은 검사들의 돌출발언은 결국 ‘검사스럽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그 검사스러움은 이제 삼성 떡값 파동으로 재현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근래 정치권에서 으뜸가는 언어의 마술사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참 나쁜 사람’으로 시작된 그의 언어 구사력은 뭇 남성 정치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콘텐츠를 뛰어넘는 정제된 언어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소위 말로 먹고산다는 언론조차도 박 대표가 오늘은 무슨 화두를 꺼낼까 궁금해한다.

말과 글에는 인격과 품격이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하지 않는가. 갈 길이 멀고 험할수록 더욱 침잠되고 절제된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도발적이고 폭력적인 말에 대한 유혹이 클수록 감정에 치우친 언어의 유희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맥베스(셰익스피어)의 독백처럼 영혼이 투영되지 않은 말은 결코 승천(昇天)할 수 없다.

카메라 앞에 선 대선 후보와 그 대변인들이여, 부디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조악한 말의 향연을 거두시고, 그대들을 오히려 안쓰러워하는 유권자의 쓰린 가슴을 헤아려 주소서.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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