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향]부르주아 죄의식

  • 입력 2007년 11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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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머리 좋고 재능도 있어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 죄의식을 느껴 좌파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부르주아 죄의식’이라고 한다. 사회주의는 보통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의 이념으로 생각되지만, 잃을 것이 너무 많아 조금 잃어도 별 지장이 없는 사람들 가운데도 사회주의자가 적지 않다. 그들의 이타적 동기는 칭찬할 만하지만 감상적 죄의식에서 나온 이념은 공허할 뿐이며 공허한 이념으로 혹세무민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허황된 정책 때문에 대중의 삶이 곤궁해지지만 그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자기들 먹고사는 데도 아무 지장이 없다. 좌파의 착각은 자신들만이 약자를 위한다는 오만에 있다. 그들은 보수주의자도 실은 약자를 생각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눈가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 가운데도 이 세상이 더 정의로워질 것을 바라고 더 많은 사람의 삶이 나아질 것을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이 많다. 차이는 다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에 있다.

부자에 대한 맹목적 비난은 잘못

좌파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내가 가진 것을 남이 빼앗아 가는 무자비한 약탈체제로 단순하게 비난한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남이 원하는 것을 공급하는 사람에게 경제적 성공을 가져다주어 나도 좋고 남도 좋게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경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기세 좋던 공산권이 송두리째 몰락하는 가운데 시장경제만이 나날이 번성할 수 있겠는가. 좌파는 또한 부자를 부정한 수법으로 돈을 모은 ‘원죄’를 짊어진 사람으로 취급한다. 물론 노력 없이 세습 덕분에, 혹은 부정한 수단으로 축재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수는 근검 노력하여 그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부자에 대한 비난에는 정당한 것도 있다. 돈은 우선 정당하게 벌어야 하지만 쓰는 것도 제대로 써야 한다. 제대로 된 부자는 ‘돈 쓰는 법’을 안다. 빌 게이츠가 대표적 예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의 부자 가운데 많은 수가 아직 졸부 수준이다. 열심히 일하고 모은 정당한 재산이라도 탈세나 탈법을 획책하는 순간 정당성은 훼손되고 세인의 비난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세계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국가경제를 이만큼 발전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세계적 기업이 탈세와 탈법에 휘말리는 사태는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부를 누린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둘 때가 되었다. 국민을 80 대 20으로 나누는 짓 같은 것 말이다. 지나친 과시용 소비는 비판받아야겠지만 적당한 소비는 경제의 활력소가 된다. 우리는 지금 산업사회를 넘어 포스트산업사회로 가고 있다. 산업사회의 윤리는 검약, 저축이고 소비는 죄악시되었다. 그런 정신이 남아 있어서 아직도 사치성 소비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제는 정당하게 모은 부의 향유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명품을 들고 다니는 부자들이 자선 기부금을 얼마나 냈는지를 물어보자.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빌 게이츠’가 있는지 자성해 보자. 이만큼 살면서 우리처럼 기부에 인색한 국민도 없을 것이다. 정당하게 번 돈이라도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움켜쥐고 있다면 그 모습은 추하다. 자선은 여유 있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각자 자기 수준에서 나보다 불우한 사람 돕기를 실천해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불행한 것인데 그럴 바에야 버스 뒤 칸에 서서 불행해하느니 좋은 차에 앉아 불행한 게 낫다고 하던 어떤 이의 말이 기억난다. 그때 그 말은 너무 천박하게 느껴졌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인간의 행복이 물질적 충족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다. 더 많이 베풀기 위해서도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하고 소유해야 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 환상 깨야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도 깨야 한다. ‘정신적 삶’ 운운하며 훈수 두려 하지 말자. 우리가 고급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 오는 인도나 티베트 사람들의 삶은 상상하는 만큼 행복하지 않다. 이제 위선을 떨쳐 버리고, 열심히 일해 열심히 벌고 그것을 나보다 불우한 이웃과도 나누겠다는 목표를 세워 보자. 그런데 그런 목표를 부추겨 줄 대선 후보가 없는 것이 참으로 유감스럽다.

박지향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서양사 jihang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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