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국정감사도 개혁해야 한다

  • 입력 2007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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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 17일 정기국회의 국정감사 현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대정부 비판의 날을 세워 가던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연이어 제정된 유신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국정감사제도를 폐지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후 제정된 6공 헌법은 유신으로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국민적 염원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와 더불어 국정감사제도를 부활시켰다.

국정감사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정기국회 기간 중에 국회가 국정 전반에 걸쳐서 감사권을 행사하는 우리 헌법상 가장 강력한 국정 통제 제도이다.

외국 헌법에서는 단지 특정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권만 인정할 뿐이며 국정 전반에 걸친 국정감사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 헌법상 국정감사제도는 제헌헌법에서 채택한 이래 국회의 독보적인 권한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나라의 민주화, 정권 교체, 권력의 투명성, 그 어느 것도 실현되지 못했던 시대에 국정감사는 국정 비리를 파헤치는 최고의 무기였다. 권력기관의 잘못을 폭로함으로써 위정자의 비리는 언제든지 국정감사를 통하여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심어 준 점에서 국정감사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정감사는 매년 9월 10일부터 20일간 실시한다. 하지만 금년에는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 의결로 10월 17일부터 실시됐다. 12월 19일 예정된 대선을 앞둔 제17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은 민생을 살피지 못하고 정쟁으로 얼룩져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다. 국감은 대선 후보 비리 폭로장이 되어 버렸다. 주권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은 대선 후보를 위한 홍보대리인으로 전락했다. 국감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원의 저질 공방과 난무하는 막가파식 속언을 지켜보는 국민이 오히려 안쓰럽다.

이제 국감이 국정의 막힌 곳을 뚫어 내는 것보다 오히려 그 폐해가 더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의원이 국정 의혹은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채 피감기관을 닦달하는 데 여념이 없다. 피감기관 관계자를 마치 죄인처럼 윽박지르는 모습은 결코 민주화된 의정 현장이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원의 질책에서 헤어나려고 궁리하는 관계기관의 과공(過恭) 또한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국정감사를 전후해 국가기관들이 수감 준비를 하느라 행정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진다. 한 트럭 이상의 무리한 자료 요구를 해 놓고 정작 제대로 한 번 열어 보지도 않고 폐기 처분하는 과정에서 국가 기밀과 개인정보가 유출된다.

우리나라도 민주헌법에 기초한 정권 교체와 정부 교체가 일상화됐다.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정보공개법 행정절차법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되고 있다. 국회의 실질적 역할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 예산전문성 제고와 예산통제의 실질화를 위한 국회 예산정책처, 입법기능의 실질적 보좌를 위한 국회입법조사처가 설치됐다.

성숙된 한국 민주화의 현 단계에서 보면 국정감사제도는 폐지해도 무방한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헌법 개정 사항이다. 그렇다면 현행 국정감사제도는 존치하더라도 국정감사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감사 대상 기관의 대폭 축소, 지방화시대에 부응해 자치단체에 대한 감사의 지방의회 위임, 감사원과의 연계 감사를 통한 중복 감사의 시정과 같은 제도 개혁을 이뤄야 한다.

국회로서는 황금알과 같은 권한을 놓치고 싶지 않겠지만 새로운 국정감사 모델을 창출하지 않고서는 국민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시대가 변하면 변화된 시대에 걸맞은 제도로 조응해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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