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노무현의 嫡子’ vs 이명박

  • 입력 2007년 10월 26일 20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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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는 1년여가 남아 있어 섣불리 예측하긴 힘들지만 공화당에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경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독주가 뚜렷해지고 있다. 공화당 레이스에서는 뉴욕시의 재정 적자와 높은 범죄율을 반전시킨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약간 앞서간다. 본선에서 두 사람이 대결할 경우 힐러리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다.

현직 대통령 심판하는 대선

미군 3830여 명이 사망한 이라크전쟁은 공화당 정권의 수렁이 됐다. 명분을 잃은 전쟁에서 젊은 장병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며 눌러앉을 수도 없고,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분자들에게 이라크를 내주고 물러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힐러리는 상원 투표에서 이라크전쟁에 찬성표를 던졌고 지금도 그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다. 힐러리는 이라크의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혁신 벤처기업인 특강에서 미국의 보수주의는 대결주의라고 비난했는데 그 논법대로라면 민주당이면서도 이라크전쟁을 지지한 힐러리는 보수주의, 대결주의 신봉자인가. 노 대통령은 짧은 지식으로 국제정치학의 새 경지를 개척해 가고 있다. 힐러리의 태도는 자이툰부대 파병에 찬성해 놓고 지금은 철수를 주장하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도 대비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내정도 F 학점이다. 그는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2400억 달러 흑자의 연방정부 예산을 물려받아 1600억 달러 적자로 바꾸어 놓았다. 주택시장 침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여파로 달러화는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뉴올리언스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에 대한 늑장 대응 이후 부시 정권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낸다. 어느 모로 보나 상하원의 다수당 자리를 민주당에 내주었던 작년 중간선거 분위기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선과 총선은 집권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라는 성격을 어느 정도 지닐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노무현 실정(失政)의 수렁을 빠져나가기 위해 신당이 급조됐지만 국민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50%대의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이 후보가 잘생기고 말 잘하고 흠 없는 후보여서가 아니라 국정 실패의 반사이익을 몽땅 가져가고 있는 데다 경제대통령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과 이 후보는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범여권 후보들의 단일화가 이루어지더라도 50%의 벽이 높아 보이는데, 현재 분위기는 노 대통령이 열심히 ‘노무현 대(對) 이명박’ 구도를 만들어 가는 양상이다. 예를 들면 정부의 기사송고실 폐쇄만 하더라도 그렇다. 노 대통령이 일선 기자들을 분기탱천한 투사로 만들고 있다. 신당의 한 국회의원은 “자신이 대선 후보였더라도 진보 보수언론 가릴 것 없이 모두 적으로 돌려 놓겠는가”라고 개탄했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는가 했더니 요즘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경시 발언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면서 범여권의 호재를 악재로 바꾸어 놓는다. 신당 정 후보가 개성공단을 찾아본들 NLL 먹구름이 걷힐 것 같지 않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브리핑에서 홍보수석실 명의로 발표한 글을 통해 생각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는 “국민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원칙과 가치에서 다른 지도자와 분명한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편만 짠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가치가 있어야 편도 늘어나고 승리한다. 나는 끊임없이 원칙을 말해 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이은 신당의 후보자가 자신이 지키려고 한 원칙과 가치로 차별화하는 것을 조건으로 지지할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해 저문 5일장의 진보장사

지지자들을 힘들고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스스로 실토한 대통령, 현직 시절에 여당 간판을 내리게 한 최초의 대통령, 소외 계층을 위해 일한다면서 빈부 양극화를 심화시킨 진보…. 노 대통령은 해 저문 5일장에서 실패한 진보장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학을 전공하는 한 교수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이명박 선거다. 이 후보가 실수하지 않으면 이기는 선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까지는 조선왕조 500년보다 더 긴 한 달하고도 20여 일이 남아 속단(速斷)하긴 이르다. 이 와중에 이른바 진보적 원칙과 가치를 따르는 ‘노무현의 적자(嫡子)’ 대 이명박 구도로 대선을 치르려는 대통령의 전략이 선거판에 어떤 바람을 몰고 올지 궁금하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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