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한국마라톤 이대로 뛰다간…

  • 입력 2007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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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열린 동아일보 2007 경주국제마라톤 여자부에서 35세의 윤선숙(강원도청)이 2시간 35분 53초로 우승하자 육상인들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칭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 마라톤의 서글픈 현실’을 한탄하기도 했다.

이날 풀코스를 완주한 국내 엘리트 부문 선수는 남자가 9명, 여자는 6명. 국내에서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선수는 남녀를 통틀어 50명 안팎에 불과하다. 결국 올 시즌 남자 세계랭킹 16위로 2007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8분 04초로 우승한 이봉주(37·삼성전자)와 윤선숙 등 ‘노장 2인방’이 한국 남녀 마라톤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육상 지도자들은 “기록 단축 동기 유발과 선수 저변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뒷받침이 없는 게 정말 큰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마라톤에 애착을 가졌던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은 1980년대 초 2시간 15분 벽을 깨는 선수에게 5000만 원, 10분 벽을 무너뜨리는 선수에게 1억 원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선수들에게 큰 자극을 줬고 이홍렬은 1984년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14분 59초로 우승해 50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서울에서 아파트 3채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황영조는 1992년 벳푸마라톤에서 2시간 8분 47초를 기록해 1억 원을 받았다. 육상인들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봉주가 역주한 원동력이 이 명예회장의 과감한 투자 및 포상책 덕분이라고 말한다.

현재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 신필렬)이 내건 마라톤 남자 한국기록 경신 포상금은 20여 년 전 수준인 1억 원. 그런데 세계기록 경신엔 10억 원을 내걸었다.

육상인들은 “깨지도 못할 세계기록에 10억 원을 거느니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할 현실적인 포상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록대별로 포상금을 거는 것도 방법이다.

선수 발굴도 중요하다. 한 마라톤 감독은 “꼭 선수만이 아니라 일반 어린이들이 달릴 수 있는 대회를 만들어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일본에는 일반 학생들이 참가하는 대회가 많다. 일본이 2시간 6분대에 뛸 수 있는 남자 선수가 많은 배경이다”고 말했다.

한국 마라톤을 중흥시킬 방법은 분명히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의 적극적인 ‘당근과 채찍’이 시급한 상황이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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