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창용]기러기 아빠 더는 만들지 말자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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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이 대통령선거의 쟁점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고등학교 다양화와 대학입시 자율화를 주장하자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비난하고 나섰다. 고교 입시가 부활돼 초중고교가 입시지옥에 떨어지고 자립형 사립고는 부자만의 학교가 되어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동아광장을 통해 평준화제도의 개선을 주장해 온 필자로서는 교육 문제가 대선 쟁점이 된 것이 무척이나 반갑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금도 입시지옥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구해 주기 위해 정동영 캠프가 교육정책을 바꿔 주기 바랄 뿐이다.

이명박 교육정책이 시작되면 대학은 성적순으로만 학생을 선발하고 고교입시가 부활한다는 주장은 평준화에 안주해 온 국민에게 무서운 위협임에 틀림없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필자는 학교 간의 차이를 공개하지 않고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책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미국의 하버드대는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을까? 다년간의 경험으로 어느 고등학교가 우수한지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체 평가를 통해 고교 등급을 매겨 입학생 수를 배정한다. 다양성을 확보하려고 지역별 인종별 안배에도 신경을 쓴다.

교육 살리려면 입시정책 바꿔야

같은 학교 출신을 비교할 때도 학업 성적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우수 고교 출신이라면 학생회장이나 축구선수가 성적 우수자보다 입학 가능성이 크다. 학교 이름으로 학업 능력이 검증된 셈이니 성적보다는 리더십과 교외 활동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도 고등학교에 대한 정보 없이 신입생을 선발하라면 SAT 성적만으로 줄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적순 줄 세우기가 걱정된다면 학교 간 격차를 인정하되 대학이 신입생 출신 학교를 다변화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백번 낫다.

자립형 사립고 수도 크게 늘려야 한다. 지금처럼 소수의 특목고, 외국어고만 허용하면 입시지옥을 막을 수 없다. 원하는 사립학교를 모두 자립형 고교로 전환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30년간 유지해 온 평준화 정책 덕분에 과거 명문고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명문 고교는 대부분 공립학교였다. 지금 자립형 사립고를 많이 출범시키면 과거 체제로 회귀하기보다 다수의 명문 고교가 지역별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고교가 많아지고 이들에 대한 정보가 투명해지면 대학도 다양한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므로 현재의 특목고 입시 경쟁보다 상황이 악화될 까닭이 없다.

자립형 사립고의 귀족화가 걱정된다면 저소득층 학생을 20% 이상 의무적으로 선발하도록 하자. 그렇게 되면 이들 학교는 우수한 저소득층 학생을 유치하려 서로 경쟁한다.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이 빈곤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립학교는 그대로 평준화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공부 못하는 학생만 모아 놓은 열등학교가 생기지 않는다.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웠던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상위권 학생은 경쟁을 시키되 나머지는 구분하지 말자는 의도다. 이와 함께 사립학교에 나눠 주던 재정 지원을 공립학교에 집중하면 공립학교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자사고 늘리고 대입 자율화 전환

다만 한나라당 공약과 달리 당분간 교육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학원에 주었던 사교육비가 자립형 사립고의 교육비로 바뀌는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이렇게만 돼도 낮에 학교에서 잠자고 밤에 학원을 가던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만 가면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기러기 아빠의 교육비를 국내로 가져오기만 해도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고등학교까지는 국내에서 다녀야 우리나라에 애정을 가진 국민을 길러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유학 시절 미국에서 태어나 그곳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내 자식을 굳이 한국에 데려와 교육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평준화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기러기 아빠가 돼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이창용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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