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상영]오리지널과 복제

  • 입력 2007년 10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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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했을 때 국내 휴대전화 업계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사실 MP3플레이어, 동영상 재생,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200만 화소 카메라를 갖춘 휴대전화는 우리 기술로도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복잡한 기능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터치스크린’ 방식과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남이 하면 따라 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먼저 할 수는 없는….

IT-명품업체 제휴 잇달아

3월 LG전자가 기막힌 타개의 묘수를 찾았다. 명품업체 프라다와 손잡고 ‘프라다폰’을 만든 것이다. 프라다가 휴대전화 디자인을 맡고 LG는 여기에 맞춰 기능을 배치했다. 터치스크린 방식인 이 제품은 디자인과 색상에서 격조가 느껴질 정도로 ‘명품’ 티를 낸다. 대당 780달러나 하는데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4개국에서만 6개월 만에 40만 대가 팔렸다.

삼성전자는 명품업체 조르조 아르마니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11월 ‘아르마니 휴대전화’에 이어 내년 1월 ‘아르마니 LCD TV’를 내놓을 예정이다. 정보기술(IT) 업체와 명품 업체의 제휴가 향후 대세가 될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제품을 만드는 순서도 지금까지는 기능을 생각한 뒤 디자인을 했지만 이제는 명품업체가 디자인을 먼저 하고 삼성이나 LG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다.

외국 명품업체와 제휴하려면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정확한 계약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초기에 LG전자 내에서는 프라다 측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데 대해 ‘노예계약’이란 한탄까지 나왔다는 후문이 있다. 세상에, 제품의 대부분을 만드는 업체가 이름만 빌려 주고 겉포장만 해 주는 업체에 굽실거리며 사정을 해야 하다니….

한국기업이 굴욕을 감수하면서 명품업체와 제휴를 맺는 것은 소비행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소비에서 벗어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소비,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기 위한 소비가 세계적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 일부 선진국의 최상류층만 향유하던 명품이 요즘에는 중국, 인도에서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나만의 것을 가지려는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면 제조 기술보다 남이 생각지 못하는 제품을 만드는 독창성(originality)이 더 중요해진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으로 인재를 대량 양성해 압축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한국에서는 독창성이 환영받지 못했다. 오히려 ‘튄다’는 평가와 함께 배척당하기 십상이었다.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창조 역량은 서구사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프라다와 아르마니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들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앞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독창성과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체의 문화 역량이 몇 계단 올라가야 해결될 문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화가나 작곡가가 나타나고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때 명품 브랜드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주입식 교육 대신 독창성 길러야

중요한 것은 역시 교육이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은 단기간에 신흥 산업국가로 성장하는 데는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 계단 도약해야 할 시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그림과 음악을 접하면서 지적 예술적 체험을 하고 상상력을 키우지 않으면 독창성은 길러지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이미 18세기 중엽 고대작품 모방을 배격하고 그 작가 외에는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런 운동을 주도한 영국 시인의 도전적 질문은 음미할 만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는 모두 오리지널이었다. 그런데 죽을 때는 모두 복제품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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