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신화]“공기는 사 마시지 않았으면…”

  • 입력 2007년 10월 11일 03시 03분


코멘트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지구 산소의 4분의 1을 만들어 낸다고 알려진 아마존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어 “머지않아 생수처럼 신선한 공기를 사 마시는 게 당연시될 수 있다”고 하면 대부분의 학생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웃어넘기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먹는 생수가 보편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인데, 그 후 10년 동안 지구환경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구온난화로 대변되는 기후 변화가 가장 위협적이다.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지구 온도가 2100년까지 최대 섭씨 6.4도 상승하고 전 세계 해안지대의 30% 이상이 침수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또 독일 포츠담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1750년 산업혁명이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지구 온도는 0.7도 상승했지만 2070년까지는 3도가 오르게 된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60여 년 후에는 북극 빙하와 아마존 우림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더 섬뜩한 것은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기상 이변 등으로 2050년까지 ‘환경난민’이 1억50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유엔환경계획(UNEP)의 예측이다. 물론 이러한 비관적 예측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며 온난화 현상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기상 이변이 지구촌 곳곳을 급습하면서 기후 변화를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으로 인식하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2100년 지구온도 6.4도 상승

이런 ‘재앙 시나리오’를 접하면서 유독 착잡한 심경이 되는 이유는 그 비극적 전망이 1979년 유엔기후회의, 1988년 IPCC 창설,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 등을 통해 제반 노력을 기울인 결과 받은 ‘온난화 성적표’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사회가 제시한 여러 조치가 목표 설정이나 선언적 수준에 그친 결과로서, 결국 ‘국가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로 2005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가 발효됐으나,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이 자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의정서 비준을 거부해 실효성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또한 산업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책임 공방도 치열한데, 미국은 중국이나 인도 등 개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받지 않는 한 교토의정서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며 별도의 정책 마련을 공언하였다. 반면 온난화 문제의 자체 해결 역량이 부족한 빈국(貧國)들은 선진국 책임론을 내세우며 기술과 재정 지원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경제 격차로 빚어진 갈등 현상인 ‘남북 문제’가 환경과 기후 분야로 번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해 영국을 중심으로 기후 변화를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는 ‘기후 안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고, 5월 다자 간 기후변화협상 촉진을 위해 유엔사무총장 직속의 기후변화특사 3명이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올해 1월 다보스포럼, 6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9월 유엔총회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각각 기후 변화가 핵심 의제로 다루어졌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움직임들은 기후 변화가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 준다. 이제 문제는 국가 이기주의를 뛰어넘어 ‘지구적 책임감’을 토대로 정책 개발과 재정 마련 및 기술 제고를 위해 합의된 사안들을 얼마나 행동으로 옮기느냐에 있다.

한국도 ‘지구 구하기’ 앞장서야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의 2배를 웃도는 1.5도가 상승하였고, 극단적 기상 현상이 잦아지면서 환경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기상 이변과 관련해 예보에 실패한 기상청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고 기후 변화 관련 펀드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비해 근본 원인인 기후 변화를 안보 문제로 인식하는 범국가적 접근과 투자는 미비한 실정이다. 이제 세계 10위권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우리도 녹아내리는 빙하와 바다에 잠겨 가는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지구 구하기’ 프로젝트를 선도해 나가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앞으로도 계속 ‘사서 마시는 공기’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렸으면 하는 바람에서라도 더욱 그렇다.

이신화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