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준수]정신질환 신약처방 제한 없어져야

  • 입력 2007년 10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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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뇌과학의 발달로 정신질환은 뇌의 이상에서 비롯되며 감기처럼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뇌 질환임이 널리 인식돼 가고 있다. 질병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짐에 따라 치료 의약품 개발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최근에 나온 약물들은 예전에 비해 효과가 크고 부작용도 줄어들게 됐다.

세계정신의학회는 항정신병약물 사용 가이드라인을 통해 최근 개발된 신약들을 모두 일차약물로 사용하길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 만든 정신병 치료 가이드라인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약들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90% 이상의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는 반면 아직 우리나라 정신과 환자들은 이런 신약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새로운 약물들이 기존의 약물보다 고가라는 데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전체 의료비용 중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용은 2, 3%에 지나지 않는다. 또 고가의 신약을 쓰더라도 이런 약물들이 질병의 재발이나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기간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효과 측면에서는 오히려 의료비를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의료정책은 이에 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실제 개인 병원에서 고가의 신약을 처방받기가 쉽지 않다. 의료비 증가를 원치 않는 보험공단 측에서는 환자 1인당 진료 수가가 많이 청구된 병원에 대한 이른바 의료비 심사를 통해 이런 신약 사용을 암암리에 제한하고 있다. 환자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합한 치료와 효과 좋은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행위를 의료 외적인 요인에 의해 제한받는다는 것은 환자들의 건강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질병 부담이 가장 큰 10대 질병 중에 우울증 정신분열병 등 정신질환이 5개나 포함돼 있다. 그 정도로 정신질환은 사회적 비용 부담이 큰 질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 지출에서 정신과 관련 비용은 크지 않은 편이다. 다른 질환과 달리 사회적 편견으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정신과 환자와 그 가족에게 사회는 더 많은 배려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 보건당국은 근시안적 정책 수립에서 벗어나 긴 안목으로 장기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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