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오빠

  • 입력 2007년 10월 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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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단편 ‘한계령’(1994)에는 큰오빠가 등장한다. ‘꿋꿋하기가 대나무 같고 빈틈이 없던 오빠’는 중년우울증에 빠진다. 오빠는 부모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자식이지만 동생들 학비까지 책임진 가장이기도 했다. 과묵했지만 가족 모두를 속정으로 어루만져 온 든든한 존재였던 오빠는 쉰이 넘으면서 진이 다 빠진 듯했다. 그런 오빠를 바라보는 여동생은 눈물이 핑 돈다. 오빠의 이런 이미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꼭 10년 뒤 김영하의 단편 ‘오빠가 돌아왔다’(2004)에는 정반대의 오빠가 등장한다. ‘세탁기에서 여동생 팬티나 훔치며 온갖 변태 짓을 다 하던’ 오빠는 가출했다가 ‘못생긴 여자애 하나를 달고 기어들어 와서는’ 아버지를 때리기까지 하는 패륜아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소설 속 오빠의 추락은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가부장의 추락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어느 부분 현실적이다.

▷요즘엔 오빠가 너무 흔하다. 남자친구나 애인은 물론이고 남편이나 술집 손님까지 오빠로 불린다. 남자에 대한 모든 호칭이 ‘오빠’로 평정된 듯해 남 보는 데서 여동생이 진짜 오빠를 오빠라 부르기가 머쓱해질 지경이다. 여자들 입에서 오빠가 흔해진 건 오빠에 대한 갈망 때문이라는 역설이 있다. 자기만 챙기기 바쁜 세태에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나를 지켜 줄 혈육같이, 변하지 않는 누군가를 절실히 바라는 여심(女心)의 반영(소설가 이청해)이라는 것이다.

▷오빠란 말에 너무 쉽게 ‘무너지는’ 남자의 심리를 포착한 여자들의 술수라는 분석도 있다. 30대 신정아 씨도 50대 변양균 씨를 e메일에서 오빠라고 불렀다. 또 다른 50대 ‘오빠’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 중년 남자들이 ‘오빠’에 약하다. 나이 들면서 성적(性的) 정체성을 잃어 간다는 불안에 대한 반작용 심리일 수 있다.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미소 짓는 신 씨와 넋 나간 듯한 변 씨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법의 영역을 떠나 한국 중년 남자의 초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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