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김영모 모델

  • 입력 2007년 9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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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모 빵집’에서는 부자가 함께 빵을 만든다. 아들(26)은 초등학생 때 공부를 싫어했다. 유명하다는 과외 선생을 붙여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은 책만 보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다고 애원했다. 고교 중퇴 학력의 아버지는 ‘가난한 학력’이 주는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부는 억지로 시킬 수 없었다. 아들은 “저도 아빠처럼 빵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2대 가업(家業)은 아버지의 의지가 아니라 아들의 반항으로 시작된 것이다.

▷빵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가난 때문에 고교 1년을 마치고 중퇴한 김 사장은 공짜 빵이라도 실컷 먹자는 생각에 빵집에 취직했다. 너무 힘들어 뛰쳐나오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의 내면에 가득했던 비관과 분노가 발효돼 빵처럼 서서히 구워졌다. 빵을 반죽하며 마음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빵을 구우며 기다림을 배웠다. 아들의 열정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삶의 방편이었던 빵이 아들에게는 ‘놀이’였다. 물집이 손바닥을 덮어도 싱글벙글했다. 김영모(54) 사장은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 반가웠다.

▷김 사장은 아들이 초등학교를 마치자 바로 프랑스 제과직업학교로 보냈다. 아들은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될 뻔한 대형 사고를 이겨 내며 빵 공부에 매진해 한국인 최초로 2003년 국제기능올림픽 제과 부문 동메달을 땄다. 김 사장은 자녀 교육이란 싫어하는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아버지가 아들로부터 거꾸로 배운 것이다.

▷김 사장은 서울 강남에 도곡동 타워팰리스점 등 4개 점포, 13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단순한 빵 가게 주인이 아니다. 1998년 대한민국 제과기능장, 7월 ‘이달의 기능 한국인’으로 선정된 빵 장인(匠人)이다. ‘맛있고 예쁘고 소화 잘되는 빵’을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은 하루도 쉼이 없다. 그는 “유럽의 빵 명가들처럼 오래 대를 이어 ‘시간을 파는 빵집’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모 빵집’은 새로운 빵집 문화(文化)를 만들고 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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