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진창수]한일 갈등 사이클 벗어나자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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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총리직 유지를 고수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일본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사퇴에 대해 한국에서는 그가 왜 갑작스럽게 그만두게 됐는지, 앞으로 누가 총리가 될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한일 관계에서 본다면 7월 29일 참의원 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는지, 포스트 아베로 지목되던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간사장보다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이 왜 급부상하게 됐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

온건보수파 후쿠다 급부상

참의원 선거 참패 이후에도 아베 총리가 연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민당 내 이전의 파벌 연합체제가 붕괴되면서 총리가 정치적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옛 자민당 체제 아래에서는 정국의 상황에 따라 파벌의 영수들이 총리를 그만두게 한다든지 또는 담합하여 총리를 압박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이후에 일본 정치는 총리의 정치적 주도권이 공고해지면서 파벌 영수의 영향력을 뿌리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사퇴 압력에도 불구하고 정국을 운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 일본 정치의 변화를 보아야 한다. 일본 정치에서 총리의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얘기는 한국의 정책도 총리관저의 동향이나 정책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누가 ‘포스트 아베’가 되는지는 일본의 정치권과 사회가 아베 총리의 사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일본 자민당이 후쿠다 전 관방장관에게 관심을 두는 이유는 아베 총리와는 차별화된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후쿠다 전 관방장관은 아베 총리와 달리 온건 보수파이며 아시아와의 관계에서도 협력적으로 알려져 있다.

후쿠다 카드의 등장은 아베 총리가 주장해 온 헌법 개정, 대북 강경 정책과 같은 안보 문제가 일본 국민에게서 그다지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일본 정치권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양극화 사회 해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받아들인 셈이다. 앞으로 자민당의 정치가들이 아베 정권의 복사판이라고 비판받는 ‘아소 카드’와 아베와 차별화된 ‘후쿠다 카드’ 중 어떤 선택을 할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아베 총리의 사퇴를 통해 일본 정치권은 국민이 ‘전후체제의 탈피’라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신자유주의 개혁에 더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됐다. 포스트 아베 정권은 다가오는 중의원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외교문제에서 적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누가 차기 총리가 되더라도 현재의 대북 강경정책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으며 한일 관계에서도 적극적인 화해의 제스처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획기적 관계 개선 과욕 버려야

한국은 포스트 아베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한일 관계의 사이클을 돌이켜 보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앞섰다.

그래서 정권 초기에는 한일 협력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나오지만 일본의 망언이나 역사교과서 문제가 빈출하면서 그 의욕은 상대방에 대한 불신으로 변했다. 그 결과 정권 말기가 되면 다시 예전처럼 한일 간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고 서로를 무시하거나 배신감을 가지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이제는 이런 한일 관계의 갈등 사이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를 정권 초기부터 냉철한 원칙과 이익이 공유되는 전략적인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한번에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과욕을 버릴 때 가능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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