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민동용]정상회담 - 인질석방 ‘멀티태스킹 정부’?

  • 입력 2007년 8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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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8일 오전 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하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언제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 실장은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23명 중 배형규 목사가 살해당하자 지난달 27일 대통령 특사로 아프간에 파견됐다가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3일 귀국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29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 협의를 위해 국정원장을 비공개로 초청했다.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막중한 책임을 진 백 실장은 아프간 체류 중에 이 소식을 들은 셈이다. 아프간 대통령을 면담하는 백 실장의 머릿속은 어땠을까.

김만복 국정원장은 지난달 31일 아프간 피랍자 중 심성민 씨가 살해된 것이 확인되자 다음 날 오전 국회 정보위원회 긴급 간담회를 열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이미 북한의 초청을 받은 상태였다. 김 원장은 다음 날인 2일 평양으로 향했다.

국회 정보위원들을 앞에 둔 김 원장의 머릿속은 어땠을까.

청와대와 국정원은 피랍자 2명이 살해되고 남은 사람들의 목숨이 위중해지는 긴박한 국면에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또 다른 국가적 이슈를 떠안았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두 개의 중대 현안을 동시에 다루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고 김선일 씨 이라크 피랍사건이나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 등 외교안보 이슈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떠올리면 과연 백 실장과 김 원장이 이번 피랍 사태에 얼마나 집중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백 실장의 특사 활동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현재까지의 대체적인 평가다.

더욱이 22일째 아프간에 인질로 잡혀 있는 자식과 배우자의 안부를 걱정하며 애를 태우는 가족들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접하고 오히려 속을 태우고 있다. 한 피랍자 가족은 “남북 정상회담은 국민 모두가 잘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21명의 귀중한 생명이 촌각을 다투고 있는데 왜 지금입니까”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피랍자 안전 귀환과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선을 염두에 둔 정상회담 졸속 추진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동용 정치부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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