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 ]高卒화가 안창홍

  • 입력 2007년 7월 29일 2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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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서양화가 안창홍(54) 씨는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스물다섯 번 열고 수백 차례 단체전에 참가하며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구축한 서양화가다. 그는 고졸이다. 그것을 당당하게 밝힌다. 10대 때 가난 때문에 학비를 걱정할 처지이긴 했지만 대학에 못 갔다기보다 안 갔다는 게 본인 이야기이다.

화가에게는 지식보다 체험이 더 중요하다, 지식이 오히려 방해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1972년 고3 때의 10월유신(維新), 그리고 대학가의 데모와 휴교를 보면서 대학 다니는 게 시간 낭비라고 여기기도 했다. “대학이 아닌 자갈치시장(그의 고향은 부산이다)에서 길러지는 화가도 있다. 화가가 그림만 잘 그리면 됐지 간판이 무슨 필요 있느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자유롭고 순수해야 할 예술계가 학벌과 인맥으로 싸우기도 하고 뭉치기도 했다. 작품이 아니라 세력으로 승부하려는 예술가들이 세운 진입 장벽 때문에 설움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오기가 생겼고 그게 도리어 에너지가 됐다. 오직 실력으로 자신을 보여 줄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학연이나 전공에 신경 쓰지 않고 종횡무진 살 수 있었던 자유로움이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서른한 살이던 1984년 부산의 대형 화랑인 공간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미술 제도권’에 화려하게 등단했다. 1991년에는 서울 샘터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의 화랑과 미술관이 선호하는 인기 작가로 올라섰다. 1989년에는 프랑스 카뉴 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에 관해 주옥같은 평론들을 쏟아 냈다.

화려한 원색을 바탕으로 한 그의 그림은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이성이나 합리, 논리를 뛰어넘는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중론이다. “숱한 그림을 보지만 빨려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속으로 빨려 들 것 같다.”(미술평론가 박신의)

안창홍의 상상력은 일그러진 가족사, 불량기와 우울, 광기로 얼룩졌던 젊은 날들의 기억, 자살 미수라는 ‘죽음에의 접근’ 등 자기만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예술은 학력이나 사회적 위계질서의 ‘높은 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풍부한 체험을 통해서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화려한 학력이 오히려 장애가 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추어주는 데 속아 안주(安住)하는 바람에 재능을 탕진해 버린 경우다. 빈약한 학력은 어쩌면 콤플렉스가 아니라 성공의 원동력을 만드는 위대한 힘일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의 어록이 연상된다. “나는 하늘로부터 가난한 것, 허약한 것, 못 배운 것 세 가지 은혜를 받았다. 가난 때문에 부지런해졌고 허약한 몸 때문에 건강에 힘썼으며 초등학교 중퇴 학력 때문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스승으로 여겨 배우는 데 애썼다.”

학력은 뜻을 이루는 데 편리한 도구일지는 몰라도 결코 전부일 수는 없다. 학력이 내실을 뒷받침하는 경우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빌 게이츠는 스무 살에 하버드대를 자퇴했다. 한국도 학벌로 말하는 사회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때 더 멋진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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