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길진균]기자실 의자 바꾸는 게 취재지원 선진화?

  • 입력 2007년 7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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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국정홍보처 회의실.

“이 의자 어때?” “이게 더 안 좋아?”

몇몇 홍보처 직원이 각기 다른 모양의 의자 20여 개에 잠깐씩 앉아 보며 품평을 하고 있었다. 회의실 중앙에는 납품업체가 가져다 놓은 몇 가지 형태의 기사 송고용 부스도 있었다.

홍보처는 며칠 전부터 서울과 과천의 정부청사에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통합 브리핑룸에 설치할 부스와 의자를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자가 다가가자 홍보처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지금 쓰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죠? 기자들에게 최대한의 취재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가장 좋은 모델을 고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부스는 좌석당 약 100만 원, 의자는 개당 20만 원이 넘는 상당히 좋은 것들”이라고 했다.

언뜻 보기에도 부스 크기는 지금 것보다 2배 가까이 컸고 의자도 안락해 보였다. 홍보처에 따르면 이런 고급스러운 부스와 의자가 서울과 과천의 통합 브리핑룸에 각각 170개와 210개가량 설치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의 언론정책이 불과 4년도 안 돼 달라지면서 국민이 낸 세금을 허비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기자의 얼굴이 일순간 찡그려졌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9월 개방형 브리핑룸을 만든다며 기존의 기자실을 통폐합했다. 당시에도 대규모 공사를 했고 수억 원을 들여 기사송고실에 들여놓을 사무용 집기를 새로 구입했다. 그렇게 만든 기사송고실을 또다시 통폐합하기로 하고 새로운 집기를 사들이는 것이다. 정부의 물품관리 규정에 따르면 책상은 8년, 의자는 7년 이상 사용하도록 돼 있다.

이번 통합 브리핑룸 공사와 집기 구입에만 29억 원이 쓰일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등에 쓰게 돼 있는 예비비에서 55억 원을 지출하기로 해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55억 원이면 초등학교 결식아동 23만 명에게 점심을 10일가량 먹일 수 있다.

부스와 의자를 고급스러운 것으로 바꾸는 게 정부가 말하는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인가.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진짜 필요한 건 정보 공개와 자유로운 취재 환경”이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답하는 것이다.

길진균 정치부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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