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주향]그래도 평창은 축복의 땅이다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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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체가 붉은 티를 입고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때 그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쾌감이 생긴다. 그때 그 열정으로 2014 평창을 꿈꾸면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불러 보고 싶었다. 그런데 희망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통곡하는 저 순박한 얼굴의 강원도 사람을 보면서 나도 울먹거렸다.

이상하다. 다 우리가 된다고 했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자체 보고서까지 모든 분야에서 완벽하다고 평가하지 않았나. 우리가 준비된 만큼 우리 것인 줄 알았다. 그 상서로운 예감에 허를 찔렸다.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었다.

나는 숭고한 올림픽 정신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음험한 국제정치의 그림자를 본 것 같아 곤혹스러웠다. 게다가 이번에 평창으로 결정되면 2016년 도쿄 올림픽 유치가 불리할 테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일본의 정서에 바짝 정신을 차렸다. 스포츠가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것마저도 준엄한 역학 구도로 결정되는 매정한 국제정치였다.

“다 된 줄 알았지유….” 상실감에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하고 줄줄줄 눈물을 흘리는 여인을 보는데 왜 100년 전 억울하고 서러웠던 우리 역사가 겹쳐지는지….

1907년 7월 14일을 기억하는가? 고종 황제의 특사로 헤이그로 떠났던 이준 열사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며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다 좌절되어 순국한 그날! 그때 고종이나 이준 열사가 믿은 것은 ‘만국평화’의 기치가 아니었는지…. 세계 평화를 내세운 만국평화회의는 일본의 부당한 침략으로 평화를 위협받던 약소국 조선의 오롯한 소망을 외면했다.

이번에 우리는 다시 한 번 국제정치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배웠다. 만만찮은 수업료를 내기도 했다. 당연히 패인을 분석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 분석이 미래를 위한 돌파구여야지, 서로 당신 잘못이라고 매도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아픈 동료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갈등 요인이 되면 안 된다.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부둥켜안고 함께 울 수 있다. 몸살을 앓고 나면 몸이 살아나듯 절망적이고 정직한 통곡 후에 강인한 체질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이번 실패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유치를 전제로 추진했던 개발 계획은 어떻게 할 것인지 생산적으로 의견을 모아 보자. 지금 당장이야 허탈감으로 힘이 빠져 미래가 안 보이겠지만 분명히 두 차례의 실패를 통해 축적된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자산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지 말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다시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벌써부터 그때는 더욱 힘들어질 거라는 분석이 나오는데 어디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쉬운 적이 있었던가! 나는 우리 민족성을 믿는다. 포기할 때 포기하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할 줄 아는 그 끈기 있고 건강한 삶의 의지를.

생은 실패 없는 성공이 얼마나 오만하고 가벼운 건지를 일깨운다. 쉬운 성공을 경계하도록 또 한 번 아쉬운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한 것이라고 믿어 보자. 이럴 때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믿음 체계가 힘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 하늘은 사람의 지극한 정성을 외면하지 않고 적절한 때에 이뤄 주신다는 것!

가까운 시일 내에 오대산에 가 보고 싶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전나무 숲길을 맨발로 걸어 봐야지. 상원사에서 신을 신고 다시 적멸보궁까지 걷다 보면 여기가 세상의 중심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까. 동계올림픽이 아니라 해도 평창은 정말 매혹적인 땅이고, 강원도는 한반도의 축복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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