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주제: 전쟁·군사 용어와 인권

  • 입력 2007년 6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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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폭발 거포 탱크 무기 전쟁 용병 사냥 전사 킬러…. 전쟁·군사 용어가 언론, 특히 스포츠 면에 자주 등장하면서 사라져야 할 군사문화를 존속시키고 인권 침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전쟁·군사 용어 추방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6일 본사 회의실에서 ‘전쟁·군사 용어와 인권’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양우진(영상의학과 전문의)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황도수(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

사회=송영언 독자서비스센터장》

―전쟁·군사 용어의 사용 실태부터 살펴보지요.

▽김일수 위원장=스포츠를 전쟁에 비유하다 보니 ‘전진’ ‘승리’ ‘개가’ 등 군사 용어를 습관적으로 남용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6·25전쟁 발발 57주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심리적 전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단면을 보여 주는 셈이죠.

▽윤영철 위원=‘갈색 폭격기’ ‘탱크’ 등 별명으로 선수를 부르는가 하면, 경기도 ‘격침’ ‘고지 점령’ 등 거의 전쟁 상황에 비유해 보도하는 일이 잦습니다. 마치 선수가 전쟁에 동원되는 전투병이라도 되는 듯한 인식을 부지불식간에 심어준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인권 침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양우진 위원=스포츠는 대부분 팀워크로 경쟁하는 특성상 ‘편싸움’이라는 기본 구도를 갖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좁은 의미의 전투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현장의 분위기를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비유적 표현 중 하나로 전쟁 용어를 선택했다고 해서 ‘군사문화에 길들여진 탓’이라고 매도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전쟁 분위기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 군사 용어를 남용한다면 군사문화가 확산될 우려는 있겠습니다.

―특히 용병이라는 단어에 인권 침해 요소가 적지 않다는 지적인데요.

▽황도수 위원=외국인 선수에 한정해 돈 때문에 팔려온 상품인 듯 비하하는 표현이니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잠재된 차별적 용어라고 하겠습니다. 경기력은 논외로 한 채 비하적 의도가 깔려 있는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꿔서 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윤 위원=외국에서 팔려와 활동한다는 의미에서 용병이라는 용어는 은연 중 성적이 나쁘면 방출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또 내·외국인을 분리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측면도 걱정입니다. 심지어는 ‘토종과 용병의 대결’이라는 제목까지 나오더군요. 거칠고 잔인한 폭력성을 가진 유색인종이라는 부정적인 인상도 심어 주고 있습니다. 차별을 전제로 하는 용어의 사용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양 위원=특별한 의도 없이 관습적으로 쓰는 표현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인종차별적 거부감을 느낀다면 인권 차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의식적인 차별이라고 무리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차별적 요인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용병은 결코 중립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마치 인생의 종착역에 이른 폐인이라는 황량한 느낌마저 줍니다. 이런 의미가 스포츠에 투영되면 난폭하고 막나가는 선수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입니다. 특히 ‘흑인 용병’ ‘갈색 폭격기’ 등 사람을 색깔로 구분하는 표현은 인종차별이라는 편견이 전제되는, 옳지 않은 표현입니다.

―편집간부나 기자들이 용어 선택에 더 많은 고민을 해야겠지요.

▽윤 위원=자극적이고 눈길을 끄는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의도와 상관없이 독자의 의식 속에 편견이 고착화됩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스스로 ‘용병’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큰 불쾌감을 갖게 될지 생각해 보세요.

▽양 위원=‘숨통이 트일 듯’이란 신문 제목을 보았습니다. ‘한숨 돌릴 듯’ 정도로도 충분할 텐데 너무 거칠죠. 전반적으로 신문에 이런 자극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독자의 눈길을 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언론의 오해가 자극적 표현을 더욱 부추기지나 않는지 우려됩니다.

▽황 위원=하지만 군사 용어가 갖는 기본 전제는 대립과 양극화 그리고 흑백논리라는 점에서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배타성을 없애고 공존하는 사회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서라도 보도 용어 선택에 한층 고민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김 위원장=전쟁은 목적을 위해 가장 귀중한 것도 수단화하는 상황을 말하지만 스포츠에서는 규칙과 신사도라는 문화적 요인이 기본입니다. 가장 신사적이어야 할 스포츠가 전쟁 용어에 감염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슛돌이’ ‘재간둥이’ ‘축구황제’ 등 좀 더 순화된 서정적 표현을 발굴하고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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