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제2의 금융 빅뱅

  • 입력 2007년 6월 2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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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그제 “한국 금융산업에 빅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당시 3만여 명의 금융기관 직원이 직장을 잃은 ‘금융 빅뱅’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얘기다. 요즘 다시 금융 빅뱅론이 나오는 것은 최근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안이 국회 재경위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여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생명보험사 상장안 통과 등도 한몫했다.

▷금융 선진국이라 하면 영국 미국 싱가포르 홍콩 호주 등이 꼽힌다. 모두 영미(英美)계 금융시스템과 법률체계를 가지고 있다. 영미계 시스템은 ‘금지된 것 말고는 다 허용하는’ 포괄주의다. 반면 독일 프랑스 등 대륙법은 ‘할 수 있는 것을 나열하는’ 열거주의다. 예를 들어 유가증권에 대한 정의에서 미국은 ‘이러이러한 속성을 가진 것을 증권이라고 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그 속성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증권을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 한국은 ‘국채 회사채 주권…을 증권이라고 한다’고 해 놓아 새 상품 창조가 불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선물 옵션 스와프 등 새로운 금융 거래는 항상 영미계 국가에서 시작됐다. 자통법은 대륙법체계인 현 자본시장 관련법을 영미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예정대로 2009년 이 법이 시행되면 한국도 자본시장제도만큼은 꽤 선진화된다. 자통법은 또 증권사, 선물회사, 자산운용사, 신탁, 종금 등 금융회사별로 각각 존재하던 6개의 법률을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체계적인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금융산업은 가장 확실한 미래 성장 동력이다. 하지만 스위스 국가경영개발원(IMD) 평가에서 한국의 금융 부문 국가경쟁력은 38위에 불과하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무엇보다 증권사들이 미국의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54개 증권사의 총자산을 모두 합쳐도 골드만삭스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호주의 경우 우리의 자통법과 비슷한 금융서비스개혁법이 2001년 제정된 후 4년 만에 자본시장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났다. 우리 자본시장도 그렇게 커질 수 있을까.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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