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대학정책, 사르코지의 경우

  • 입력 2007년 6월 17일 21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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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어느 모로 보나 좌파의 길을 걸었어야 했다. 헝가리 출신 아버지와 그리스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인 그는 전형적인 비주류(非主流)다.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국립행정학교(ENA)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졸업한 낭테르대는 드골 정권을 몰락시킨 68혁명의 진원지다. 낭테르대는 68혁명 이후 파리10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대학을 다닌 1970년대 초반은 68혁명과 베트남전쟁 반대 분위기 속에서 좌파이념이 프랑스 국민에게 뼛속 깊이 파고든 시기였다. 그런 가운데 그는 우파 청년조직에서 뛰었다. 거칠고 직설적인 언행도 세련된 우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민자 출신이면서도 그는 이민자의 적(敵)이었다. 내무장관 시절인 2005년 파리 교외에서 아랍계 이민자들의 소요사태가 일어났을 때 “인간쓰레기들을 진공 청소하겠다”고 말했다.

좌파에 물든 대학에서 교육받은 그는 프랑스 대학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대선 공약이 대학의 경쟁력 강화다. 실제 예산 편성 및 집행 등에서 대학에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하는 대학자치법안이 7월 중 의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프랑스 대학들은 지원을 해 준대도 경계하고 있다. 말이 지원이지, 결국은 개혁하라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왜 예상되는 반발을 무릅쓰고 대학에 메스를 대려는 건가. 프랑스 국가경쟁력 추락 뒤에는 경쟁력을 잃은 대학교육이 있다. 프랑스는 2006년도 스위스 국가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지수에서 61개국 중 35위를 기록했다. 38위인 한국에 비해서는 3계단 높지만 인도 29위, 태국 32위보다도 낮은 순위다.

프랑스 대학의 경쟁력은 더 한심하다. 영국 더 타임스가 발표한 2006년도 세계대학랭킹을 보면 200위 안에 드는 프랑스 대학은 7개다. 이 중 4개가 ‘대학 위의 대학’이라는 그랑제콜이고 나머지 3개가 대학이다. 900년 전통의 소르본(파리4)대가 200위에 턱걸이한 것이 인상적이다. 장로베르 피트 소르본대 총장이 “프랑스 대학은 평준화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경제와 사회의 필요성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고백할 정도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이 대학개혁으로 이어지진 못할 것 같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68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의 핵심 가치이다. 대학을 자율과 경쟁으로 내모는 것을 프랑스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도 프랑스엔 희망이 있다. 대학의 문제점과 개혁 방향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들은 대다수가 사립이다. 대학이 국유화된 프랑스와는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학을 소유한 것처럼 군다. 3불(不) 규제를 강요하더니 이젠 내신반영 비율을 지키지 않는 대학에 연구지원금을 끊어 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충분한 성찰 없이 내신 무력화를 시도한 대학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 우리 대학의 취약한 재정(財政)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연구비를 끊어 ‘목줄’을 조이겠다는 발상이 고약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대학 규제를 풀기 위해 애쓰고, 우리는 대학을 옥죄느라 애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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