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영아]남 일 같지 않은 ‘日연금의 배신’

  • 입력 2007년 6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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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공중에 뜨고, 누락되고….’

1997년 복수의 연금기록을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일본 사회보험청의 관리 소홀로 5000여만 건의 기록이 사라졌다.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이 붙은 일본의 연금 공방은 이제 판도라의 상자를 연 듯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날마다 튀어나오는 새 사실과 숫자에 참의원 후생노동위원회의 한 의원은 “미궁 같다. 질문할 때마다 새로운 숫자가 튀어나온다”고 한탄했다. 쏟아지는 뉴스에 시민들의 반응은 한숨을 넘어 울분으로 들끓는다. 추상적인 정책에는 별 관심이 없던 일본인들도 가뜩이나 불안한 노후 문제가 걸린 연금문제라면 달라진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정말 질렸습니다.”

“‘국가가 두목’(관청이나 공기업의 경영이 방만해진다는 뜻)이라는 속담 그대로네요.”

이들은 자신의 연금이 안전한지 확인하고자 사회보험청 사무소로 전화를 걸거나 직접 상담 창구를 찾지만 급조된 아르바이트 상담원에게서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해 또다시 화가 치민다.

일본의 연금 공방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운명이 걸렸다는 참의원 선거의 쟁점이란 점에서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태를 지켜보며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일본인들이 관(官)과 행정에 느끼는 배신감과 낭패감이다.

일본 사회에는 ‘오카미(御上) 의식’이라 하여 나라님(관료 또는 정치인)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국가는 발전하고 개인의 생활도 보장된다고 믿는 경향이 강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잿더미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의 발전은 분명 그렇게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연금 공방을 보면 국가를 믿고 피땀이 밴 돈을 맡겼던 국민의 신뢰가 완전히 배신당했음이 느껴진다.

다급해진 집권여당은 14일 하루에만도 ‘앞으로 연금 기록을 IC카드에 기록해 개인이 확인하도록 하겠다’ ‘역대 후생노동상에게 급여 반납 조치를 취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계획들을 쏟아 냈지만 돌아선 민심을 붙들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투명하지 않은 관료 행정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일본인이 평소부터 관을 무작정 믿지만 말고 제대로 감시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도 갖게 된다.

그나저나 TV에서 날마다 나오는 뉴스를 보며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한국은? 괜찮아요?”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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