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병규]실패경영에서 성공을 찾으려면

  • 입력 2007년 6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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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경영학’이 새로운 사업 전략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실패를 창조적 경영 활동의 일부로 중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은 얼마 전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획기적 상상’이라는 대형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30여 개의 GE 계열사 제품 중 10여 개의 실패작을 뽑아 원인과 해결책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호 표지 기사는 ‘애플에서 배우는 교훈’이었다. 애플이 심각한 침체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분석한 기사다. 여기서 제시된 4가지 교훈의 마지막은 ‘선의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fail wisely)’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기존 제품인 ‘뮤직폰’의 처절한 실패를 통해 태어났다고 분석한다.

선진 기업들이 실패 경험을 중시하게 된 것은 경영 여건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기술 혁신의 가속화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품 수명의 주기가 그만큼 짧아졌다. 기업이나 국가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신제품이나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모험적 투자를 그 어느 때보다도 과감히 단행해야 한다. ‘창조적 혁신의 시대’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어떠한가. 창의성과 모험 정신이 중시되는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우려가 된다. 경제의 도전적 성향을 가늠하는 척도라 할 수 있는 설비투자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고, 제조업 창업이 부진하다는 분석도 계속 제기된다. 개발 시대에 충만했던 야성적인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의 목소리가 높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위험 회피 경향이 커진 것은 외환위기의 후유증으로 보인다. 외환위기는 고도성장의 성공 신화에 취해 있던 한국 경제에 실패의 참담함을 깨우쳐 주었다. 하지만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지나친 경계심과 규제가 경제를 움츠러들게 했고, 실패의 책임에 대한 떠넘기기식 논란이 과감한 도전 의식을 약화시켰다.

한번 승자가 되면 이를 바탕으로 모든 이익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 경향이 고착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승자가 모든 실익을 취한다는 피해의식은 도전적 정신을 갉아먹는 독약과 같다.

21세기는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은 불확실성의 시대다. 세계화된 지식 사회에서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경제적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깊게 뿌리내린 패배의식으로부터 국내 기업과 정부가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올해는 외환위기 10주년이다. 과거의 실패 원인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이를 정리하는 통과의례를 마련해 외환위기가 남긴 패배감을 말끔히 떨쳐 내야 한다. 최선을 다했으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의의 실패’를 너그러이 인정하고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의욕적 도전을 억제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실패의 과정과 교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가치 있는 실패에 대해서는 소정의 보상을 부여해 ‘도전에 대한 인센티브’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도전 정신과 모험심을 키워 주는 청소년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공과 실패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거나 도전을 일회성 게임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다양한 사회적 성공 모델을 일찍부터 제시해 줘야 한다. 이들이 각자의 다양한 개성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창의적인 교육 체제를 만드는 것이 경제의 생기(生氣)를 되찾는 첩경이 될 것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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