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임숙]원묵초등생 두 번 울리는 악플

  • 입력 2007년 6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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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애들이 커서 조승희가 된다.”

“정신적 충격 좋아하네. 요즘 초딩(초등학생)이 어떤 ××들인데.”

언뜻 보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꾸짖는 글처럼 보이지만 끔찍한 사고에 충격을 받은 아이들을 조롱하는 글이다.

본보는 5월 30일자 A2면에 학부모가 소방훈련 도중 추락해 숨진 서울 중랑구 원묵초등학교 학생들에 대한 서울시 소아청소년정신보건센터의 조사 결과를 처음 보도했다. 사고 현장을 본 학생의 절반 이상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세를 보이고 있어 추적 관찰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언론들도 이 사안을 보도했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관련 기사가 주요 뉴스로 올랐다. 이들 기사에 댓글이 달렸다. “엄마로서 슬프네요”라는 동정적인 댓글은 몇 개에 불과했다. 100여 건은 비난과 악담으로 채워졌다.

기자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에 있었던 사람을 지난해 만난 적이 있다.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던 그는 “어떤 일에도 집중이 되지 않고 사고 장면이 떠올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른도 이런데 하물며 어린 아이들이야 어떻겠는가. 깜짝깜짝 놀라면서 잠에서 깨어 엄마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이, 사고 당시가 계속 떠오른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마치 내 자식인 양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참혹한 사고현장을 목격하면 길든 짧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정신의학 교과서에는 끔찍한 사고나 전쟁을 겪은 사람의 5∼75%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는다고 쓰여 있다. 이런 사람들에겐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사랑 속에서 공황상태를 극복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인 어린이들에겐 정신적 생채기가 남지 않도록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인터넷이란 ‘익명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며 툭툭 던지는 악의가 담긴 글이 당사자에겐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악플러’들은 한번쯤이라도 생각했으면 한다. 서울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피해자가 악플을 읽으면 사건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악몽을 꾸는 불안한 상태가 지속된다”면서 악플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상식을 깨는 악플에 원묵초교 학생들과 학부모는 다시 한번 울고 있다.

하임숙 교육생활부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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