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대선주자들의 경제관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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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토론의 주제는 경제와 과학이었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이 이 분야 국가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실제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16대 대선이 눈앞에 다가온 2002년 12월 10일. 노무현 이회창 권영길 후보가 참석한 주요 대선후보 2차 TV 합동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처음부터 ‘기업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주최 측이 준비한 질문은 대기업의 일부 문제점에 집중됐다. 이른바 ‘경제력 집중의 폐해’가 도마에 올랐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대기업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글로벌경쟁 속에서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에 대한 물음도 거의 없었다.

대선후보들의 답변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다수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선거철이고 질문 내용 역시 석연찮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업인 때리기’가 두드러졌다. 묻는 사람이나 답변하는 사람 모두 한국에서 부정적 어감(語感)이 강한 ‘재벌’이라는 표현을 여과 없이 쏟아 냈다.

좌파 성향 정당이야 그렇다 쳐도 집권 여당이나 제1 야당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경제계에서는 이들이 보여 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와 ‘우물 안 시각’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어 대선을 사흘 앞둔 12월 16일에는 사회·복지·교육 분야 3차 토론이 있었다. 온갖 장밋빛 약속을 내건 ‘말의 성찬(盛饌)’이 벌어졌다. 하지만 재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기 어려웠다.

다시 대선의 계절이다. 현 정부 5년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와 함께 각 후보와 정당의 정책이 선택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의 경험상 선거 막판으로 치달을수록 냉철한 이성적 판단보다 이미지와 바람, 연고(緣故)에 휩쓸려 막상 중요한 국가적 어젠다와 정책노선의 차이가 자주 잊혀지기도 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경제는 중요한 테마다. 이 정권 사람들은 우리 경제가 제대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동의하는 국민은 드물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 “현재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며 앞으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우려한 사람이 80%에 가까웠다. 현 정권에 더는 기대를 걸지 않는 국민이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에서 대선은 우울한 경제심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 중 극소수를 제외하면 정파에 관계없이 시장 및 기업친화적 정책을 강조한다. ‘큰 정부, 작은 시장’ 노선의 폐해가 컸던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의 참담한 실패에 대한 반작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4년 반 전 TV 토론의 개운치 않은 기억은 선거철이면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정치인들의 한계도 보여 주었다.

앞으로 펼쳐질 대선 레이스에서 대선주자들이 자신의 경제관을 분명히 보여 주길 바란다. 대학을 졸업한 백수가 넘쳐 나는 고용 현실, 갈수록 비대해지는 정부와 공기업 조직,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 시장경제의 근간인 재산권 침해 논란, 눈 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채무에 대한 견해와 대안을 듣고 싶다.

세상을 읽는 대통령과 참모들의 인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우리 국민은 절감했다.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눈을 부릅뜨고 대선주자들의 경제관을 살펴봐야 한다. 그 판단과 선택이 국가는 물론 우리 자녀의 앞날을 좌우할 수도 있다.

권순활 경제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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