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환상을 부르는 남북 정상회담

  • 입력 2007년 5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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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안팎에서 거론되는 대선 이슈 중 하나가 남북 정상회담이다. 연말 대선 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대선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여권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비선 등 다양한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여권 통합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한나라당이 독주하는 판세를 바꿀 수 있는 길이 바로 남북 정상회담 개최라는 게 범여권의 구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얘기하지만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어할지 모른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 연내 개최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드러났듯이 북한은 정상회담 개최에 앞서 ‘보상’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기 위해 현대를 통해 4억5000만 달러의 뒷돈을 줬다가 특검까지 받았다.

현 정부는 북한에 뒷돈을 줄 능력도 없다. 임기가 9개월밖에 안 남은 정부를 위해 누가 드러나지 않게 거액을 대겠는가. 정부는 이미 연간 40만 t의 식량과 30만 t의 비료 등을 북한에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 지원이 쉽지 않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하지 않더라도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국가정보원의 북한 전문가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최고경영자(CEO)와 오너가 만나면 누가 우위에 서겠느냐”고 반문했다. 곧 자리를 내줘야 할 노 대통령은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지만 종신 통치자인 김 위원장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회담을 자기 페이스대로 끌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상회담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독일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1970년 3월 첫 동서독 정상회담 개최 이후 1990년 통일 때까지 20년 동안 4차례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서독이 정상회담에 매달리지 않고 실질적인 교류 협력을 추진한 것이 통독을 앞당겼다는 게 정설이다.

범여권 사람들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핵 문제 해결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환상이다. 북한이 핵 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은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보다는 북미 관계 개선에 집착하고 있다고 전한다. 체제 수호를 급선무로 생각하고 있는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지렛대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이 쉽게 핵무기를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

반면 미국은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미관계를 개선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6자회담과 남북관계가 균형을 맞추며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6자회담 합의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가운데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한미 공조체제에 금이 갈 위험성이 높다.

현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은 북-미 간에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측면 지원하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인내와 원칙에 충실해야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앞당길 수 있다.

김차수 정치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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