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남호]책으로부터의 도피

  • 입력 2007년 4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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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영화를 보면 낡아빠진 책 한 권 때문에 목숨을 바쳐 싸우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책 속에 무림의 최고수가 될 수 있는 비법이 적혀 있어서다. 옛 선비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책을 보기 위해서 멀리 있는 친구 집을 방문하곤 했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세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독서 강요하는 부모-선생

내가 대학 다닐 때, 하숙집에 있던 책 한 권 때문에 어디론가 잡혀가서 호된 곤욕을 치른 친구가 있었다. 책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명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고 스포츠광이 된 젊은이가 있고, 헤세의 소설을 읽고 불교도가 된 서양 젊은이가 있다. 책은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위험한 물건이다.

우루과이 작가 도밍게스가 쓴 소설 ‘위험한 책’에는 책 때문에 희생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노교수는 도서관 선반 위에 있던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이 머리 위로 쏟아져서 반신 마비가 되었고, 어떤 여인은 헌책방에서 산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서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어떤 개는 화가 나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입과 발로 북북 찢어서 몽땅 삼켜 버린 뒤 소화불량으로 죽고 말았다. 책은 위험한 것이니 멀리 해야 한다는 익살이 담긴 얘기다.

슈테판 불만은 책 읽는 여자의 그림을 모아서 책을 썼는데, 제목이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책에 빠져 있으니, 남자의 사랑이 침투할 자리가 없을 뿐 아니라,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터이니 남자(아버지, 남편, 애인 등)의 잘난 체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자체로 위험할 뿐 아니라 책 읽는 사람조차 위험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 사람들은 책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아예 책을 멀리하고 인터넷으로 달아난다. 마지못해 책을 가까이 한다 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은 책만 고른다. 내용이 있는, 책다운 책은 아예 포기하고 가볍고 시시한 책만 고른다. 특히 ‘마음의 양식’이 되거나 ‘인생의 등불’이 될 만한 책은 아무도 찾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책 속에서 ‘인생의 등불’을 발견하는 대신, 모니터 속에서 ‘인생의 환락’을 찾는 데 점점 더 익숙해져 간다. 모니터 혹은 윈도와의 대결에서 책의 참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사람이 원하는 환락과 정보의 바다는 윈도 속에 있지, 책 속에 있지 않다. 딱딱한 책은 이제 기울어진 장롱 모서리를 받치는 데나 쓰일 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책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책 읽기를 강요한다. 책을 많이 읽는 사회의 미래가 밝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독서는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지 자기가 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많은 부모나 교사는 자기도 읽지 않는 책을 자식이나 학생에게 읽도록 강요한다. 집집마다 아이 방에 어린이 책은 많지만 어른이 읽을 만한 양서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주 독서층은 어린이인지도 모른다.

책장에 양서 몇 권이나 있는지

크고 작은 독서권장단체가 아마 100개도 넘고, 각 단체에서 독서운동을 열심히 하지만 여전히 책은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독서운동 하는 사람조차 독서를 잘 하지 않는다. 독서단체나 독서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대신 그 시간과 에너지를 활용해 자신이 독서를 한다면 결과는 훨씬 낫지 않을까 한다. 남에게 권하는 독서운동보다 먼저 자기 스스로 실천하는 독서운동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기기를 든 여자보다 아름답다. 꽃을 든 남자보다 책을 든 남자가 매력적이다. 위험한 책을 읽는 사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남호 고려대 교수 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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