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軍부대까지 님비의 대상인 세상

  • 입력 2007년 4월 15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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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수비크 만(灣)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는 냉전 시절 미국의 전략요충지였다. 미군은 동서냉전이 끝나면서 불어 닥친 필리핀 국민의 반미(反美), 민족주의 바람으로 전면 철수해야 했다. 그 대신 필리핀은 미국이 한 세기 동안 매년 지불해 온 4억8000만 달러의 기지 사용료를 포기했다.

수비크 기지는 지역 주민 3만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젖줄’이었다. 1991년 미군 철수 후 필리핀은 두 지역의 급락(急落)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다. 하지만 휘황찬란했던 ‘아시아의 캘리포니아’는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는다. 미군의 장기 주둔이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남겼을 뿐이다. 그렇지만 빵 문제를 해결해 줬던 미군 주둔 시절이 그립다는 지역 주민들의 소리도 들린다.

반세기 이상 우리의 서부전선과 수도 서울 방위의 일익을 담당해 온 주한미군은 직간접으로 우리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용산 기지 주변 이태원과 한남동을 비롯해 의정부 동두천 포천 파주 문산 등은 대표적으로 혜택을 본 곳이다. 공군기지가 있는 오산 대구 등도 그렇다.

앞으로 용산 기지 터에 공원이 조성되면 환경적 이익도 막대하지만 우리 경제에 대한 미군의 기여도를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이번에 반환되는 14개 기지의 오염 문제는 별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미군 장병과 카투사, 한국인 근로자 등 1만여 명이 이태원 한남동에서 쓰는 돈은 연간 450억 원 이상이다. 내외국인 관광 및 쇼핑객은 연간 300만 명, 총매출액이 1조 원에 육박한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특전사령부의 이천 이전 계획도 지역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제주 기지는 미국의 하와이나 괌 기지와 같은 해상 전략요충지로 구상됐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 서남쪽 149km 지점의 이어도는 한중일 3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특히 중국은 백두산 중심의 ‘동북공정’에 이어 ‘이어도공정’을 꿈꾸고 있다. 이 곳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해 출동이 필요할 경우 한국 해군은 부산에서 21시간, 중국과 일본은 상하이와 사세보에서 15시간 걸린다. 한국 해군이 도착하면 상황은 이미 끝나 있을 것이다. 제주 기지가 생긴다면 8시간으로 대폭 단축된다.

이어도가 있는 남중국해는 해저자원의 보고(寶庫)일 뿐 아니라 석유와 각종 원자재, 곡물 등을 거의 100% 수송하는 통로다. 이 해상이 봉쇄되면 한국 경제는 2주일 이내에 올 스톱이다. 또한 제주 기지는 고용효과만 해도 5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군 당국은 예상한다.

이천에 하이닉스 공장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특전사는 밀어붙이는 정부의 행위가 못마땅한 것은 사실이다. 이 지역은 특전사가 개인 재산과 지역 경제에 미칠 마이너스 효과, 팔당 상수원의 오염 문제 등을 염려한다. 그러나 지역 경제에 상당한 플러스 효과도 있을 것이다. 주민들은 특전사의 안보 기능도 헤아려 보길 바란다. 송파신도시와 이천 사이에서 이리저리 떼밀린다면 특전사가 설 땅은 어디인가.

군부대 이전 같은 국가적 사업이 ‘님비’의 대상이 되면 안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 군이건 주한미군이건 이들이 있을 곳에 있어야 할 이유는 경제 이전에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다. 안보 없는 경제는 없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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