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도 “각 당이 당론으로 결정해 국민에게 책임 있는 약속을 하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즉각 대화할 용의를 밝혔다. 17일로 예정한 국무회의 의결도 연기하기로 했다. 사실상 퇴로를 찾는 모습이다. 불과 40여 일 전까지 여당이던 열린우리당마저 개헌 유보 요청에 합류한 것은 ‘기록용(記錄用) 발의’라도 하겠다는 대통령에게 U턴의 명분을 주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1월 초 개헌 카드를 처음 꺼낸 노 대통령은 두 달 뒤인 3월 초 “각 당과 대선 주자들이 다음 정부에서 개헌하겠다고 공약하면 개헌 발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발 물러선 바 있다. 이제 이 나라의 모든 정파 원내대표가 합의한 것만으로도 대통령이 주문한 조건은 사실상 충족됐다. 청와대가 자꾸 ‘모양을 더 갖춰 달라’고 조르면 볼썽사나워질 뿐이다. 이쯤에서 노 대통령이 조건 없이 포기하는 것이 본인과 국민, 그리고 정국 안정을 위한 정답이다. 구구하게 조건이나 단다면 임기 말 정국 경색은 둘째 치고, 의회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17대 대통령 선거까지 8개월 남짓 남았다. 대통령이 ‘개헌 투쟁’에 매달려 국력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후속 대책은 물론이고 하루 800억 원씩 잠재부채가 쌓이는 국민연금, 해마다 1조 원 이상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야 하는 공무원연금 등 시급히 개혁해야 할 과제들이 눈앞에 있다. 북한 핵문제도 여전히 전망이 불투명하다.
노 대통령이 민의(民意)와 정치권의 컨센서스를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한미 FTA 타결로 얻은 높은 평가에 이어 다시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국민은 생산적인 일을 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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