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국내 미니기업]<1>세계 속의 토종기업들

  • 입력 2007년 3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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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최남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최남진 기자
경기 화성시에 있는 유도실업은 플라스틱 제품 생산을 위한 금형(쇠틀)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핫 러너’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이다.

1980년 회사를 세운 유영희 회장은 독학으로 기계부품을 공부해서 ‘핫 러너’ 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유 회장은 본보 취재팀 기자와 만나 “핫 러너 때문에 나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1996년 영국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수출에 나선 유도실업은 10여 년 만에 세계 핫 러너 시장 점유율 30%로 이 분야에서 세계 3위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 제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알아준다. 높은 수준의 품질 덕분에 해외 경쟁업체 제품과 비슷한 가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수출가격이 국내 판매가의 2, 3배에 이른다. 150명의 직원이 지난해 530억 원의 매출을 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국내 중소기업 중에는 유도실업처럼 수십, 수백 명의 임직원만으로 한 우물을 파며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선 회사가 적지 않다.

본보는 올해 초 신년기획으로 기업 규모는 작지만 강력한 기술력과 조직문화로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는 20개 해외기업을 직접 찾아가 경쟁력의 비결을 분석한 ‘세계 최강 미니기업을 가다’ 시리즈를 연재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어 이번 87주년 창간기획으로 해당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을 소개하는 ‘세계 최강 국내 미니기업’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번 2부 시리즈는 전국 곳곳에 있는 핵심 우량 중소기업 20곳을 발굴해 소개할 예정이다.

이들은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 끊임없는 기술개발 노력,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영방식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기술력’의 힘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국내 중소기업들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을 통해 축적한 독보적인 기술력이었다.

경기 부천시에 있는 가격표시기 생산업체 모텍스는 독일 미국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가격표시기를 개발했다. 직원 수는 150명에 불과하지만 세계 80여 개국에 수출하면서 독일 미국 일본의 3개 기업과 나란히 세계 시장 점유율 25%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국내 슈퍼마켓 대부분은 싸고 튼튼한 모텍스의 가격표시기를 쓰고 있다.

1975년 이 회사를 설립한 장상빈 회장은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몇 년 동안 가격표시기 개발에 매달려 왔다”며 “아직도 눈을 감으면 머리 속에 가격표시기 내부가 펼쳐진다”고 말했다.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절삭공구 전문 제조업체인 YG-1은 공구의 본고장인 독일과 일본에까지 제품을 수출하는 세계 1위 기업이다. 1982년 회사 설립 당시 국내 절삭공구 시장은 독일 일본 제품이 거의 100%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YG-1이 R&D를 통해 절삭공구를 생산하면서 국내 시장에서 외국 제품을 몰아냈다. YG-1의 세계 절삭공구 시장 점유율은 60%에 이른다.

대전 중구에 있는 오토바이 경기복 제조업체인 한일은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에 우뚝 섰다. 유럽, 미국, 일본의 세계적인 오토바이 의류 브랜드들이 납품받는 한일의 고객사들이다. 세계 각국 업체에 납품하는 한일의 제품은 유럽시장에서 40%, 일본시장에서 80%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거둔 성공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는 국내 미니 기업들은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품질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과 생산 설비 효율화를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었다.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는 SJM은 자동차의 엔진과 머플러를 연결해 주는 ‘벨로스’라는 자동차 부품 하나에 30년 넘게 매달린 결과 현재 세계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SJM은 무게는 기존 제품보다 20% 줄이고, 충격 흡수력은 20% 개선한 제품으로 해외의 많은 고객을 확보해 왔다. 이 회사는 자동차용 벨로스에서 쌓은 기술을 응용해 지난해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용 선박에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벨로스를 생산하고 있다.

SJM은 벨로스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1995년 자체 R&D연구소를 설립했다.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캐프(1995년 설립)도 자동차 와이퍼 한 분야를 선택하여 모든 역량을 집중해 세계 5위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에만 연간 매출액의 8%가 넘는 30억 원을 R&D에 투자했다.

모텍스도 매년 매출액의 10%를 R&D에 쏟아 붓는다. 생산 기계도 대부분 자체 제작한다. 비싼 일본 기계를 들여오는 것보다 R&D를 통해 자사 공장에 맞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생산성을 높인 비결이었다.

유도실업도 무차입 경영을 하면서 이익의 대부분을 생산설비와 R&D에 투자하고 있다.

○유연한 조직과 고객만족 경영

한국에 있는 ‘세계 최강 미니 기업’의 또 다른 공통점은 나름대로 틈새시장을 찾은 뒤 해당 분야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한다는 점이다. 한일은 원자재 주문에서 완제품 출고까지 걸리는 시간이 경쟁업체에 비해 2개월이나 짧은 4개월에 불과하다. 고객들에게 신속하게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생산 공정을 효율화했기 때문이다. YG-1은 고객사들이 재고 부담을 꺼린다는 점을 감안해 호주 싱가포르 중국 인도 등 주요 해외 거점 11개국에 판매회사를 두고 주문에서 배달까지 걸리는 시간을 5일 이내로 단축했다.

○가업(家業) 이어 ‘강한 기업’ 만들기도

대를 이어 세계 최강 기업을 이룬 기업들도 눈에 띈다.

강원 원주시 동화의료기기단지에 위치한 X선 촬영기 제조업체 리스템은 최신 의료기기인 디지털 X선 촬영기를 개발해 필립스, 지멘스 등 세계적인 의료기기 업체와 경쟁하고 있다.

이 회사의 문창호 사장은 아버지가 1961년에 설립한 회사를 1988년에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문 사장은 “아버지의 의료기기 공장을 이어받기 위해 충남대 의대를 중퇴하고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재입학했다”며 “한 대로 수만 명의 병을 진단하는 X선 촬영기를 만드는 것이 의사가 돼 환자를 살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경제부>

임규진 차장(팀장) mhjh@donga.com

신치영 황진영 김창원 박용 김선우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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