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인호]국민이 챙겨야 할 것

  • 입력 200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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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때 국민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온 세계가 ‘대∼한민국’을 환호하는 듯했다. 5년이 채 안 된 오늘 우리는 나라의 미래에 대해 절망 아니면 적어도 깊은 회의에 빠져들고 있다. 그에 대한 직접적 책임은 국정을 맡은 사람들의 무능과 무책임에 있다. 하지만 그들을 선출했고 감독했어야 할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처절한 성찰 없이는 국세의 추락을 역전시키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대선을 향하여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람도 많고 보수, 중도, 진보 등 이념도 다양하지만 소박한 시민의 신뢰를 얻을 만한 차분한 대안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유권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정치란 본래 타협의 예술이고 ‘가장 덜 나쁜 쪽’을 선택해 가는 과정이란 점이다.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는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어려운 부담을 질 사람이 갖추어야 할 정치적 이상과 인품, 능력의 최저한 선을 생각하며 그 선에도 못 미치는 사람부터 배제하는 접근 자세가 우선 필요하다. 동시에 누구의 미래 전망과 선거 공약이 더 보편적 타당성을 가지며 달성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가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지난번 대선과 총선 때처럼 어떤 한 가지 문제나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선거 공약에 현혹되어 선전과 선동정치에 감정적으로 놀아나는 투표행태가 반복된다면 이 나라는 구제불능의 길로 빠져들 것이다.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인권과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헌법정신을 충실히 지켜 나갈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평화나 민족통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안전과 자유와 인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던 때가 그리 먼 옛날이 아니었다. 인권과 자유라는 개념에는 평등과 공동체적 화합이라는 개념이 당연히 들어 있어야 한다. 그것들을 구현하는 방법으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까지 다양한 사상이 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절대로 배제되어야 할 것은 계급차별을 내세우는 북한 식 독재체제와의 무원칙한 타협이다. 독재와 민주주의 체제 사이에도 평화적 공존과 거래는 있을 수 있지만 체제상의 통합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에 대해 그 다음으로 검증해야 할 것이 인품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인지,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라 부패하지 않아서 좋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 불행히도 권력은 작거나 크거나 사람을 부패시키는 속성이 강하며 새 사람은 단지 부패할 기회가 없었을 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렴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 있는 이해와 포용력, 그리고 품격이다.

국가의 지도자에게 인품만큼 중요한 것이 능력과 책임감, 그리고 경륜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해도 능력이 없으면 위험이 따른다. 대통령의 상대는 국내의 유권자들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밤잠을 설치는 정치의 귀재들이다. 호형호제하다가 하루아침에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하는 치열한 친교와 은밀한 협박과 첩보전의 전선에 문외한이 끼어들어 성과를 거둘 가능성은 없다. 같은 국민끼리, 심지어는 당원끼리도 타협을 못하고 원수처럼 대치하면서, 정치체제와 경제사정이 전혀 다른 북한 정권에는 동포라는 이유로 무조건 신뢰를 보내는 위선과 어리석음은 더는 용납될 수 없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인력 구성을 검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유능하고 도덕적으로 책임감 있는 참모와 보좌진을 활용하는 능력은 지도자의 핵심 요건이다.

투표란 표피적 인상이나 풍문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유권자 개개인의 신중한 판단에 기초한 책임 있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 계보를 따지는 일은 이념이나 정책기조의 검색 과정으로 중요한 것이 물론이지만 개인의 족보를 들추는 것은 연좌제만큼 비민주적인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해 나가면서 자기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은 오로지 그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새로울 것이 없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맥 빠지는 일이다. 하지만 상식이 잊혀진다고 느낄 때는 그것을 다시 들먹거리는 아픔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인호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석좌교수 poso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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