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빅 브러더 힐러리’ UCC

  • 입력 2007년 3월 23일 1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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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출간된 힐러리 클린턴의 자서전 ‘살아 있는 역사’는 제목이 잘못 번역됐다는 의견이 있다. 원제가 ‘Living History(리빙 히스토리)’인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은 문법적으로나 내용상으로 ‘역사를 살아가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클린턴 부부를 도왔던 정치컨설턴트 딕 모리스가 가까이서 본 힐러리를 비판하기 위해 쓴 책이 ‘역사를 다시 쓰며(Rewriting History)’인 것을 보면 이런 주장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닐 터이다.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력한 민주당 후보로 뜨고 있는 힐러리는 열렬한 지지자만큼이나 모리스 같은 ‘안티 팬’도 많다. 힐러리를 지지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1만7000개나 되지만 미국인의 47%는 “대선에서 힐러리를 찍지 않겠다”고 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안보를 모르는 기회주의자’ ‘여자가 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정치적 야심 때문에 남편의 부정(不貞)에 눈감은 독한 여성’이라는 등이 반감(反感)의 이유다.

▷수많은 반대파의 공격에도 의연했던 힐러리가 자신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독재자 ‘빅 브러더’로 묘사한 한 편의 손수제작물(UCC) 동영상 앞에서는 크게 당황해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내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 의원의 지지자가 제작했다는 74초짜리 이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건수가 200만 건을 넘어섰고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는 유튜브의 정치캠페인 사상 가장 많은 조회 건수라고 한다.

▷UCC의 네거티브 효과가 무서운 것은 1인 미디어에다 주된 이용자가 젊은 층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편의 CF 같은 이런 동영상물들이 영상과 감각에 익숙한 세대에게 현실과 이미지의 경계를 무너뜨려 판단력을 마비시킨다는 데 있다. 컴퓨터게임 같은 ‘이미지’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던 4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지금의 참담한 이라크 ‘현실’이 좋은 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 어쩌면 2007년 대선의 진짜 ‘빅 브러더’는 UCC일지도 모른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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