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한-일 손잡고 비핵화 관철을

  • 입력 2007년 3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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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의한 대북 금융제재 해제에 이어 6자회담이 이어지고 있다. 어디까지 성과가 날지 지금 단계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단, 금융제재 해제의 대가로 북한이 핵시설 가동 중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의 입국을 인정한다는 큰 틀이 나타난다.

일본에서는 북한으로부터 납치 문제의 어떠한 양보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방향은 ‘틀렸다’고 보는 의견이 강하다. ‘이라크의 혼란 탓에 미국이 북한에 불필요한 양보를 했다’거나 ‘벼랑 끝 정책을 계속하는 북한에 대한 굴복’이라는 견해다. 다른 한편 중국과 한국에서는 환영하는 목소리도 크다. 핵시설 가동 중지로 군사 위기 해결에 서광이 보였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게 있다. 북한이 개발을 끝낸 핵무기의 폐기가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의 개발 성과에 대한 규제가 없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을 큰 위협으로 보지 않는 나라들에는 이것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에는 북한이 그 영향력을 받아들이고 외교적 지도에 따르는 한 북한의 핵무장 자체는 중대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도 북한 핵무기가 아직 미국 본토에 이를 능력이 없으므로 북한의 핵무기나 미사일 기술이 중동 등에 이전되지 않는 한 북한의 핵 보유 자체가 중대한 위협은 아니다. 중국 러시아 미국 등이 이번 6자회담의 방향을 수용하는 이유는 간단하게 말하면 북한의 핵무장이 별로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북한 핵은 한국이나 일본에 도달한다. 핵개발이 중단돼도 이미 북한이 핵을 가졌고 그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자체가 한일 양국의 안전을 위협한다. 북한의 핵 보유를 큰 위협으로 생각하는가, 혹은 직접 위협이 아니라고 보는가. 그 판단에 따라 이번 6자회담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문제는 6자회담의 주도권을 쥔 중국과 미국이 모두 핵보유국으로 일반적인 비핵화에 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아 왔다는 점이다.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핵에 의존해 안전을 보장받는 처지로 핵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기회를 잃었으며 미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전면적 비핵화까지 실현하려는 의지가 없다.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비핵화의 이니셔티브를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들이 손에 넣는 일이다. 이 경우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핵 삭감도 장기적인 목표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한국도 미국의 핵에 의존하는 처지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 지역에서 핵을 줄임으로써 처음으로 그 같은 대미 의존을 줄일 수 있다.

한일 양국은 이 같은 비핵화를 위한 이니셔티브와 무관하게 행동해 왔다. 한국 정부는 남북대화 확대를 우선시해 왔기 때문에 북한 핵무장의 위협을 경시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일본 정부는 납치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6자회담에서 고립이 심화돼 외교 주도권을 쥘 수 없었다.

나는 한국 정부가 남북대화에 관심을 갖는 것도, 또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에 성의 있는 대응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6개국 중 단 둘뿐인 핵 비보유국이 협력조차 할 수 없다면 비핵화의 이니셔티브를 쥐는 일은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핵보유국이 주도권을 쥐는 한 비핵화 전망은 생겨나지 않는다.

북핵 문제에서 한일 양국이 반목을 계속함으로써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위한 귀중한 기회를 잃는 것은 아닐까. 동아시아의 안전을 생각하면서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는 조건에 눈을 돌릴 때가 오고 있다고 본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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