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봉달이 모델’

  • 입력 2007년 3월 18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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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의 저자인 일본의 나카타니 아키히로는 30대를 고등학교 2학년생에 비유한다. 1학년 때보다는 학교생활에 익숙해졌고 3학년생보다 입시공부에 쫓기지 않는 2학년생처럼 인생에서 가장 즐길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다. ‘에밀’의 저자 장 자크 루소는 ‘20세에는 연인에, 30세에는 쾌락에, 40세에는 야심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파했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30대는 직업을 갖고 결혼도 하는 인생의 안정기를 만끽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2005년 한국 남자의 평균 초혼 연령은 30.9세였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집 장만을 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짐이 30대 남자의 어깨를 누른다. 게다가 30대 근로자의 40%는 정규직이 아닌 임시 일용직이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 평생 유효할 것인지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나마 믿을 만한 건 아직 쓸 만한 체력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데이비드 벨 교수는 학교 문을 막 나서는 졸업생들에게 “5년마다 열리는 모교 방문행사에 당분간 참석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출세한 몇몇 친구가 타고 온 고급 자동차를 보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자신에게 적합하지도, 원치도 않는 길로 진로를 바꾸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친구들을 만난 30대가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는 것은 한국도 비슷하다.

▷37세의 나이에 어제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이봉주 선수는 한국의 30대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국민적 애칭인 ‘봉달이’의 역전승을 보면서 30대들은 ‘우리도 아직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는 결승 테이프를 끊은 뒤 조금도 지치지 않은 얼굴로 두 아들을 가슴에 안으며 “후배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봉달이 모델’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다스리며 꾸준히 내 길을 가다 보면 짜릿한 역전, 멋진 부활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과거는 기억이고 미래는 기대’라는 말이 있다. 불안한 젊은 세대에게 스포츠뿐 아니라 일과 직장에서도 희망을 갖도록 해 주는 게 국가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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