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커피 한 잔도 증빙자료 제출하라는 접대비 기준

  • 입력 2007년 2월 20일 23시 07분


코멘트
정부가 기업 접대비의 증빙자료 제출 기준을 현행 5만 원에서 내년 3만 원, 2009년 1만 원으로 내리기로 했다. 접대비를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라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조치다.

어떤 제도를 도입하건 현실 적합성과 부작용을 따져봐야 한다. 대도시에서는 1만 원으로 설렁탕 두 그릇 먹기도 힘들다. 웬만한 호텔에서는 커피 한 잔 값이 1만 원을 넘고, 스타벅스 커피도 6000원짜리가 있다. 재래시장이나 소규모 식당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

커피 한 잔 마시는 만남까지 증빙해야 한다면 사실상 민간기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접촉이 ‘신고의 대상’이 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게 된다. 이로 인한 기업의 관리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고, 접대비 손비(損費) 인정이 많으면 기업의 법인세 과세표준이 줄어드는 만큼 세무 당국의 접대비 감시는 필요하다. 그러나 1만 원짜리 증빙자료 제출은 세무회계만 번거롭게 만들고 투명성 제고나 접대비 과용을 막는 데 기여할 것 같지 않다.

접대비와 관련해 진짜 문제가 되는 곳은 공공부문이다. 정부 투자 및 출자기관들은 툭하면 세법상 접대비 인정 범위를 초과해 지출했다.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사례가 드러난 공기업도 많다. 민간기업은 접대비 지출에서 마른 수건도 짜는 경영을 한다. 민간기업과 공공부문 중 어느 쪽이 접대비를 꼼꼼히 관리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대답은 뻔하다.

기업 접대비에 대한 지나친 통제는 한계상황에서 허덕이는 중소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의 세금은 ‘탈루 가능성’을 전제로 해 봉급생활자에 비해 높게 책정돼 있다. 신용카드공제나 현금영수증제도 등으로 자영업자 세원이 매년 100억∼200억 원씩 확대됐지만 세무 당국은 지금껏 부가가치세 등을 낮추지 않았다. 접대비 통제를 강화하기 전에 이것부터 시정하는 게 납세자에 대한 도리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