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창봉]‘빛나는 졸업장’이 요즘엔…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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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졸업식에 아예 나타나지 않거나 두세 달이 지나도 졸업장을 찾아가지 않아 교무실 서랍에 쌓아 두고 있어요. 친구 편에 보내 달라는 학생도 있어요.”

서울 O고교는 한 해 졸업생이 600명 정도 되지만 해마다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학생이 20%나 된다. 졸업생들이 뒤에라도 졸업장을 찾아가는 일이 드물어 교사들은 매년 졸업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한다.

교사들은 졸업 철을 맞아 변하는 풍속도가 학교 교육의 현주소를 실감케 한다고 말한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라는 가사가 끝날 즈음 울음바다가 되는 졸업식장을 요샌 찾아보기 힘들다. 졸업장은 이제 빛나는 존재가 아니다.

한 교사는 “옛날에는 졸업장이 구겨질까 봐 돌돌 말아 통에 애지중지 보관했는데 이제는 전화를 걸어 사정해야 겨우 찾아가곤 한다”면서 혀를 찼다.

졸업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학생들의 표면적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학 입시 실패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 자존심이 상한 학생들은 졸업식장을 멀리한다. 이런 현상은 남녀공학 학교에서 더 심한 편이다. 재수를 결심한 학생들은 일찌감치 기숙학원에 들어가 졸업식이 열릴 때 책을 붙잡고 씨름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해외 연수나 여행이다. 요즘 대학 신입생들은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에 돌입하기 때문에 입시가 끝난 뒤 평소 못한 일을 해 보고 싶어 한다. 일부 예비 고교생은 입시 중압감에 시달려 선행학습 학원 시간과 졸업식이 겹치면 학원으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학생들의 개인주의 성향과 학교에 대한 소속감 결여가 더 근원적인 이유라고 지적한다. 학교보다 학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학교라는 ‘공동체’ 의식은 이미 옅어졌다. 또 학생들은 졸업식이 끝나더라도 언제든지 친구와 휴대전화로 연락할 수 있어 친구와 헤어진다는 애석함을 가질 필요도 없다.

졸업식 노래만 울려도 친구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던 부모 세대는 요즘 학생들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세태도 변하는 법이다. 하지만 입시 중압감과 선행학습, 무너진 공동체 의식이 이런 변화를 재촉한다니 씁쓸해진다.

최창봉 교육생활부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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