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1992년 한중수교 협상 진두지휘 권병현 前주중대사

  • 입력 2007년 1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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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실무교섭 대표단장을 맡았던 권병현 전 주중대사. 권 전 대사는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민간 차원의 환경·문화 협력 확대를 강조했다. 홍진환  기자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실무교섭 대표단장을 맡았던 권병현 전 주중대사. 권 전 대사는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민간 차원의 환경·문화 협력 확대를 강조했다. 홍진환 기자
《“세계사적 흐름을 볼 때 한국과 중국의 수교는 제국주의와 냉전에 휩싸여 인위적으로 단절됐던 양국 관계의 물꼬를 튼 것입니다. 한중 관계의 발전은 과거 동북아 번영 시기를 재현하는 중요한 고리가 될 것입니다.” 만면에 온화한 웃음을 띤 은발의 노신사.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실무교섭 대표단장으로 협상을 진두지휘한 권병현(69) 전 주중대사는 수교 이후 한중 관계의 발전을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표현했다.》

올 8월로 수교 15주년이 되는 한중 관계는 그의 말대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92년 63억7000만 달러 규모였던 양국의 교역은 2005년 1005억 달러를 돌파해 15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은 한국의 제1 교역상대로 성장했고, 한국은 중국의 4번째 교역상대가 됐다. 수교 당시 9만 명에 불과했던 중국인 한국 방문객은 2005년 85만 명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90배 늘었다.

하지만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최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상호 방문 추진을 계기로 중-일 관계가 급속히 진전되는 데 따라 한중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동북공정’ 등 역사 왜곡으로 드러난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국제무대 외톨이된 북한 ‘美日과 수교’ 결단 필요

中 부상으로 ‘미들파워’ 한국 역할 커져… 실리외교를

협상 비사 담은 책 준비… 중국서 나무심기 운동 펼쳐

이와 관련해 권 전 대사는 동북아에서 한국의 역할을 ‘미들파워(Middle Power)’라는 말로 표현했다.

“중국의 부상은 미일 해양세력과의 견제와 협력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며 미들파워 국가인 한국이 이 가운데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 두 세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는 만큼 좀 더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끝으로 2003년 공직에서 물러난 권 전 대사는 한중문화청소년협회를 만들어 양국 대학생들을 이끌고 매년 중국의 서부 사막지대에서 나무심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올해부터 중국전국청년연합(공청단)과 함께 황사의 주 발원지인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쿠부치(庫布齊) 사막에 28km에 달하는 거대한 숲을 조성하는 ‘한중우호녹색장성’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한중 양국의 문물이 급격하게 왕래하다 보면 불순물도 함께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고 양국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가치, 즉 환경이나 문화 등에 대한 민간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권 전 대사는 요즘 수백 쪽에 달하는 ‘한중 수교 외교사’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 그동안 일기장에 빼곡히 적어 뒀던 비사(秘史)들도 빠짐없이 기록할 예정이다.

1992년 4월 첸치천(錢其琛) 당시 중국 외교부장의 제안으로 착수한 한중 수교 교섭은 극비로 진행됐다. 수교 교섭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대만의 거센 방해공작과 북한의 반발로 수교 교섭이 깨질 것이 뻔했기 때문.

4월 장관회담 후 5월부터 7월까지 3차례의 교섭을 벌인 양측은 하루에 10∼12시간씩, 한번에 2박 3일 또는 3박 4일간 진행된 교섭을 통해 사실상 수교에 합의하게 됐다.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 김일성 주석에게 이 사실을 통보한 것은 그해 7월 15일. 김 주석은 “북한이 미국, 일본과 수교할 때까지 일정을 늦춰 달라”고 부탁했지만 한중은 한 달 뒤 양국 수교를 공식 발표했다.

8월 24일 수교문서에 공식 서명하고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 처음 태극기가 휘날리던 순간은 30여 년에 걸친 그의 외교관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댜오위타이는 최근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장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북한은 한중 수교 직후인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뒤 1994년 4월 ‘서울 불바다’ 발언, 지난해 10월 9일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에 먹구름을 드리워 왔다.

1998년 주중대사로 부임해 남북정상회담의 물꼬를 트는 막후 역할을 하기도 했던 권 전 대사는 ‘북한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중 수교 이후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은 더욱 심해진 만큼 결과적으로 한중 수교에 따른 가장 큰 실패자는 북한인 셈입니다. 중국과 수교를 맺은 한국과, 미일과 수교를 맺지 못한 북한의 지난 15년이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북한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권병현 씨:

△ 1938년 경남 하동군 출생

△ 1958년 진교농업고등학교 졸업

△ 1963년 서울대 법대 졸업

△ 1965년 외무부 입부

△ 1985년 외무부 아주국 국장

△ 1987년 주미얀마대사

△ 1992년 외무부 본부대사

△ 1994년 주호주대사

△ 1998년 주중국대사

△ 2000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 현 한중문화청소년협회 미래숲 대표, 동북아연구원 원장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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