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헌 나팔수’ 내각

  • 입력 2007년 1월 23일 2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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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추진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각과 행정력이 총동원되고 있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범정부 차원의 지원기구 구성을 지시했고, 재정경제부는 ‘선거가 경제에 미치는 비용’이라는 문건까지 만들었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도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면 1000억 원 이상 예산이 절감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개헌처럼 민감한 정치 이슈에 내각이 직접 개입하면 행정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개헌 발의권은 헌법이 ‘최고통치권자’에게 부여한 권한이지 ‘행정부 수반’에게 준 권한이 아니다. 지금까지 개헌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총리실이 ‘정치권의 일’이라며 중립을 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원칙이 무너지면 개헌 논란과 국정이 엉키면서 민생과 경제는 뒷전인 채 올해도 소모적인 정치 공방으로 지새울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은 개헌 반대론을 공격하면서 “개헌이 국정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을 것”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개헌 이슈가 부동산, 서민경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핵 등 시급한 국정 현안을 밀어내는 모습이 뚜렷하다. 애꿎은 국민만 더 힘들어지게 됐다.

재경부는 문제의 문건에서 ‘선거 때는 통화량 급증, 금리 하락, 설비투자 둔화, 취업자 감소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에 개헌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개헌을 통해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면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지만 ‘꿰어 맞추기 식’ 주장이다. 그런 부작용은 ‘선거의 불가피한 비용’이 아니라 내각이 중립 원칙을 깨고 집권세력을 정책적으로 지원함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재경부 스스로 선거 선심정책의 들러리 노릇을 했던 과거나 반성할 일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최근 아파트분양가 규제, 분양원가 공개 등 정치권의 ‘날림 공약’들에 대해 “정치적 슬로건 아래 제시됐다”고 하고서도 여당의 좌파 코드에 휘둘려 결국 원칙을 꺾고 합의해 줬다. 재경부가 경제원칙, 시장원리를 지켜 낼 생각은 하지 않고 개헌 ‘나팔수’를 자청하고 나선다면 올 한 해 경제도 희망을 갖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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