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나는 善, 너는 惡’ 지도자의 선입관

  • 입력 200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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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수업시간에 조니?”

“숙제가 많아서 어젯밤에 잠을 못 잤거든.”

“그럼 쟤는 왜 조니?”

“원래 천성이 나태한 애잖아.”

자신의 문제는 사회구조적 요인의 탓으로 돌리고, 남의 잘못은 그 사람의 인성 탓으로 돌리는 것이 인간 심리의 속성이다. 혹시 그 같은 심리구조가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정책 결정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포린폴리시 최신호에 실린 ‘왜 강경파가 이기는가’라는 공동기고문에서 6·25전쟁 등의 예를 들어 정책 결정자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1950년 10월 유엔군이 북진할 때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논의했다. 카너먼 교수는 “당시 미국 지도부는 자신들이 중공에 대해 적대적인 의도가 없으므로 중공 측도 당연히 그렇게 여길 것이라 가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막상 중공이 참전하자 미국 지도부는 이를 중공 측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적대감의 표현으로 해석했다는 것.

하지만 비밀 해제된 사료들은 중국 공산당 측이 당시 유엔군의 북진을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음을 보여 준다. 결국 상대방의 의도를 ‘악의의 발로’로 해석하는 경향이 맞부딪쳐 강경론의 상승작용을 불러 온 것이다.

현재로 눈을 돌려보면 이라크 북한 이란 문제 등에서도 ‘나는 선의(善意), 너는 악의(惡意)’라는 고정관념의 그림자는 쉽게 찾아진다. “사람은 자신이 미워하는 상대방의 의도를 실제보다 나쁘게 해석하면서도, 자기는 상대방에게 선의로 비칠 것으로 기대한다”는 카너먼 교수의 지적처럼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 전 “이라크 민중은 미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 같은 착각은 모든 결과를 자기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 환상’과 결합돼 무모한 전쟁 결정으로 이어졌다.

카너먼 교수가 지적한 인간 심리에 내재된 함정들을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물론 한국의 여야 정치지도자들도 한번쯤 새겨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판을 받더라도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의 악의적 기도”라는 식의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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