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봉]부동산정책, 시장을 거스르지 말라

  • 입력 2006년 11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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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에서는 새 승용차 값이 2000루블, 5년을 사용한 중고차 값은 1만 루블이었다. 새 차 값은 당 간부 등 승용차 배급권을 가진 특권자에게 국가에서 공급하는 가격이다. 중고차 값은 이들이 5년 쓴 차가 암시장에 흘러나와 거래되는 가격이다. 새 차와 중고차의 차익은 분양 받은 자가 챙기고, 비용은 중고차를 사거나 세금을 내는 국민이 부담하는 셈이다.

사회주의 국가도 이렇게 시장 가격을 좌우할 수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라는 한국 정부는 주택에 관한 한 공급 가격 통제의 철저한 신봉자다. 경제부총리는 인천 검단신도시와 경기 파주신도시 기반시설 비용을 국가 재정으로 부담하면서 분양가를 낮추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민간 건설업자에 대한 분양원가 공개 요구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이런 발표를 할 때마다 시중의 아파트 값은 폭등했다. 경기 성남시 판교 같은 지역에서의 아파트 청약 당첨은 복권만큼 어렵고 분양권에 거액의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시장과 괴리된 분양가 통제는 새로운 이익 집단과 피해 집단을 만든다. 정부도 이를 알기 때문에 채권입찰, 분양권 전매 금지, 의무보유기간 등 온갖 거래 제약 장치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장 기능의 복구는 외면하고 재정 지원이나 행정력 동원만 고안하니 정책 의도를 알 수 없다.

신도시 기반시설 비용을 국고로 지원하는 것에 대해 정부는 자문해 보기 바란다. 검단과 파주에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에게 돌아갈 이익을 왜 다른 국민이 부담해야 하나. 신도시로 선정되지 않은 수도권 낙후지역 거주자의 상대적 불이익은 어떻게 보상하나. 한쪽의 재건축 단지는 개발이익을 최고 50%까지 환수하고, 다른 신도시엔 재정 지원을 하는 차별을 정부가 과연 해야 하나. 주거 수요가 몰리는 지역은 개발 비용을 올리면서 4년 뒤 등장할 변두리 지역은 분양가를 낮춰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면 국민이 정부의 의지를 믿을 것인가.

민간 건설업자에 대한 분양원가 공개 요구는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의 극단을 보여 준다. 원가 초과분을 일절 인정하지 않겠다면 이는 노동과 원자재 비용을 제외한 모든 것을 ‘착취(surplus)’로 보는 마르크스 이론을 베낀 것이나 다름없다.

자본주의 시장 기업은 자본과 창의력을 동원해서 생산하고 위험(risk)을 감수한다. 그 대가로 이윤(profit)을 얻고 기업이 과거에 쌓은 평가(상표)나 행운에 따라 특수이익, 곧 지대(rent)를 누린다. 이를 위해 기업은 경쟁하고, 경쟁적 시장과정을 통해 크게 자라기도 하고 생존하기 위해 허덕이기도 하며 도태되기도 한다.

분양원가를 공개한다면 잉여는 기업의 실적에 따라 회사마다 다를 것이다. 잉여를 불허하면 실적, 즉 능력을 쌓은 기업부터 차별받는다.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과 위험의 대가가 없는 시장에 누가 머물겠는가. 생산성을 키워 원가를 낮춘 기업, 질 좋은 주택을 지어 경쟁해 보겠다는 기업이 줄어들고, 장래에는 이런 잠재력을 가진 기업가와 경영자 및 기술력과 자원까지 주택시장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서민에게 더 비싸고 질 나쁜 주택이 공급될 것이라는 게 명약관화다.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목적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서민 주거 공급을 위함이라면 세금으로 신도시를 개발하고 염가의 국민주택을 지어 특정 계층에만 수혜를 허용함이 타당하다. 서울 강남 집부자의 불로 이득을 흡수하기 위함이라면 보유세와 거래세를 높이는 일도 옳다. 주택 가격 안정이 목적이면 수요가 몰리는 지역의 주택공급 촉진 이상의 대책이 있을 수 없다. 강남 등 수도권 인기 지역에 주택을 마음껏 팔고 신축과 재개발이 장려되도록 조세 기타 제도를 개편함이 가장 유효한 대책이다.

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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