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규칙 바꿔 게임 이기겠다고?

  • 입력 2006년 10월 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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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스킨스’는 하수(下手)에게 유리하도록 고안된 골프게임이다. 홀마다 승자가 상금을 가져가는 게임 방식에 상수(上手)의 독식(獨食)을 막기 위해 3개 홀의 상금을 차지하면 동반자 3명에게 반점씩 접어주도록 제어장치를 결합한 것이다. 6개 홀을 이기면 한 점, 9개 홀을 이기면 한 점 반을 접어줘야 하기 때문에 제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돈을 따기 어렵다. 무승부 홀이 쌓이면 막판에 하수가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노 대통령 이름을 붙인 것은 룰의 취지가 하향(下向)평준화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임에서 이기는 지름길은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판의 대표적인 악(惡)선례가 미국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4번 지낸 에드윈 에드워즈의 경우다.

주지사 재선을 앞둔 1975년 당내 경쟁이 치열해지자 그는 주(州)헌법의 예비선거규정을 고쳤다. 유권자가 당적에 관계없이 투표하도록 해 1위 득표자가 50%를 넘으면 당선되고 50% 이상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르도록 한 것이다. 지명도에서 앞선 현 지사의 유리함을 살려 당내 잠재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꼼수’는 성공했다. 그러나 악정(惡政)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지난해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뉴올리언스를 삼킨 홍수 피해도 그가 집권했을 때의 부실 제방공사가 원인이었다. 그는 2001년 수뢰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2002년 대선 때 이른바 국민참여 경선제를 도입해 전국 순회 ‘16부작 드라마’를 연출함으로써 재미를 본 여당이 ‘완전 국민경선제’라는 이름을 붙여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명분이야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의 괴리를 없애겠다’는 것이지만 ‘외부 선장 영입’을 위한 흥행용임을 누구나 안다.

100% 일반국민 투표로 정당의 대통령후보를 뽑는 제도는 정당정치를 하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예비선거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50개 주 가운데 19개 주가 오픈 프라이머리로 예비선거를 치르지만 ‘열린우리당 방식’처럼 무차별적인 것은 아니다. 26개 주는 정당원들만의 예비선거나 코커스로 불리는 당원집회에서 대의원단을 뽑는다. 나머지 5개 주는 독자적 제도를 갖고 있다.

좋은 제도라면 돈이야 부차적인 문제라 치자. 이 제도의 심각성은 ‘준비 안 된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의 출현 가능성에 있다. 미국에서도 15∼20%의 골수 지지자를 갖고 있는 ‘얼짱’ ‘말짱’이 초반에 기세를 올린 뒤 ‘눈사태 효과’로 정당 후보나 대통령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조지아 주의 땅콩 농장주이던 지미 카터가 대표적이다. 무명 후보였지만 ‘워터게이트’ 역풍에 힘입어 당선된 그는 워싱턴 정계를 적대시하고 ‘조지아 마피아’란 좁은 인재풀에 의존하다 아마추어 대통령 소리를 들었다.

오픈 프라이머리에선 정책 이슈도 사라지고 ‘누가 다음 지역 경선에서 이길까’만이 관심사가 된다. 정당정치의 실종이다. 그런데도 ‘오픈 프라이머리 카드’는 정치적 의제로서는 이미 성공한 느낌이다.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엄밀한 분석은 제쳐 놓은 채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지경이다.

폐쇄적 당내 경선방식만을 고집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겠지만 한바탕 흥행극이 끝난 뒤 국민이 허탈과 상실감에 빠지는 일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비싼 대가를 치른 경험은 2002년 한 번으로 족하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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