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정부의 말 안 먹히는 부동산 시장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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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한라비발디 모델하우스 앞. 한라건설이 파주시 운정신도시에 지을 아파트 937채에 대해 1순위 청약을 받았다.

이 아파트는 평당 평균 분양가가 1297만 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300만∼400만 원이나 높아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새벽부터 청약 인파가 몰려들었다. 청약자가 몰려들자 분양업체 측은 대기번호표를 나눠 준 뒤 순서가 돌아온 사람만 모델하우스에 들여보냈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떴다방’ 관계자들도 등장했다. 떴다방은 아파트 분양현장을 돌아다니며 투기를 부추기던 이동식 중개업소의 속칭. 이들은 청약자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상담하느라 바빴다.

결국 분양은 ‘대성공’이었다. 937채 분양에 3900여 명이 신청했다. 서류에 흠이 있는 청약자를 솎아 낸 뒤에도 3828명이 신청해 평균 4.1 대 1의 경쟁률이었다. 청약 결과에 청약자들도, 업체도 놀랐다.

특히 당혹스러워한 사람은 건설교통부 공무원들이다. 건교부는 18일 “내년에 분양될 운정신도시의 모든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훨씬 싸게 공급될 것”이라며 한라비발디 청약을 자제할 것을 권하는 보도자료를 이례적으로 냈다. 하지만 분양 현장에 몰려든 인파는 “시장은 현 정부의 ‘친절한 조언’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한라비발디에 청약한 주부 강모(43·일산동구 백석동) 씨는 “집값이 주춤하다 다시 오르는 일이 계속되는데 정부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와 서울 은평뉴타운, 파주시 운정신도시 한라비발디 등의 높은 분양가가 서민층과 중산층 내 집 마련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안타깝다. 고(高)분양가가 주변 지역의 아파트 값마저 끌어올려 집값 안정 분위기를 해치고 향후 ‘거품 붕괴’ 우려를 낳는 것도 걱정스럽다.

그러나 정부의 구두 개입이 시장에서 더는 먹히지 않고 오히려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잠시 반짝하다 ‘약발’을 잃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 외에 제대로 대책도 없으면서 하나 마나 한 ‘립 서비스’만 내놓았다가 망신을 당한 정부 당국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치영 경제부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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