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인천상륙작전 56주년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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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오전 6시 인천 월미도 앞바다. 먼동이 트면서 천지를 흔드는 포성(砲聲)과 함께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미 해병 1사단, 육군 7사단과 국군 해병 4개 대대 병력은 함포사격 2시간 만에 인천을 되찾았다. ‘크로마이트(Chromite) 작전’, 즉 인천상륙작전은 세계 전사(戰史)에 최고 상륙작전으로 기록됐다. 10여 일 후 중앙청에 태극기가 걸리고 서울이 수복됐으며 북한군 병참로가 끊기면서 6·25 전세(戰勢)는 역전됐다.

▷상륙작전 지휘함에는 70세의 노병(老兵)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서 있었다. 유엔군사령관 자격이었다. 그는 압록강까지 올라가 만주도 폭격하자고 주장해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충돌했다. 결국 이듬해 4월 해임되고 말았다.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고별연설은 지금 씹어 보아도 감동적이다. 한국어 번역문이 무려 1만 자에 이른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그는 웨스트포인트 사관생도 시절 불렀던 군가의 후렴을 인용하면서 52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했다.

▷인천 자유공원에 우뚝 선 맥아더 장군 동상은 오늘도 월미도 앞바다를 지켜보고 있다. 상륙작전 56주년을 앞둔 13일 우리 해병 참전 용사 5명이 이곳을 찾아 맥아더 동상과 ‘자유수호의 탑’에 거수경례를 올렸다.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병들의 눈매는 꽃다운 20대 그대로였다. 기념일인 15일에는 재향군인회 초청으로 한국에 온 미 해병 참전 용사 200여 명이 이곳을 찾는다.

▷맥아더의 상륙작전이 없었다면 통일됐을 것이라는 반미(反美)단체, 몇 차례나 동상 철거 소동을 벌인 그들의 정체는 뭔가. 오죽 답답하면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철거하려면 미국으로 보내라”고 했을까. 그는 지난달 휠체어를 타고 맥아더 동상을 직접 찾았다. “새 친구가 은(銀)이라면 옛 친구는 금(金)이다. 맥아더 장군의 업적은 순금이다”는 그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맥아더 덕분에 공산화를 막고 번영을 이룬 처지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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