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파주에서 생긴 일

  • 입력 2006년 8월 27일 20시 10분


코멘트
경기 파주시 사람들은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벌금을 물리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너무 심하다는 불만도 있다. 그럼에도 벌금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청결이다. 그러나 단지 청결 그 자체만이 목적은 아니다. 생존의 문제가 달려 있다. 연례 행사였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파주는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한강이나 임진강 상류에 비가 많이 오거나 서해의 만조(滿潮)가 겹치면 침수를 피할 길이 없다. 실제 1990년대 후반 큰 수재를 3번이나 당했다. 그러나 올해는 집중호우에도 피해가 거의 없었다. 배수펌프장 제방 등 수해방지시설을 갖추기도 했지만 도시가 깨끗해진 덕분에 물난리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침수 피해가 사라진 이후 파주에는 대기업 공장이 잇달아 들어서고 있다. 경기도와 파주시가 LG필립스LCD단지를 1년 반 만에 완성하자 새 공장 터를 찾던 LG 계열 4개사는 파주에 입지를 결정했다. 신속한 예산 집행도 경쟁력이다. 파주시는 올해 예산의 85%를 상반기에 썼다. 공사를 10월 안에 끝내고 한겨울에 땅 파는 일이 없다. 예산 집행이 빨라지니 자연히 돈이 돌고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파주에는 요즘 문의와 교육 요청이 밀려든다고 한다. ‘주간동아’는 이런 파주의 변화를 ‘초라한 군인 동네가 첨단 신도시로 변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파주 이야기를 소개했지만 이 밖에도 성공한 지방은 많다. 중앙정부가 죽을 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비결은 경쟁이다. 지방정부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실패한 시장이나 군수는 주민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경쟁력이 있는 지방은 앞서 가고 그렇지 못한 지역은 뒤처진다. 지역 간의 경쟁은 국가 간의 경쟁보다 훨씬 치열하다. “글로벌 경제의 지리적 경제적 단위는 국가가 아닌 지역”이라고 한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 씨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지방정부의 발목을 잡는 중앙정부에 있다. 임진강 상류에 한탄강 댐이 진작 완공되었다면 지난 몇 해 동안 경기 북부지역의 수해도 줄어들었을 터이다. 파주시나 고양시의 수해방지시설 투자도 달라졌을 것이다. 댐 건설 여부를 8년이나 끌다가 지난주에야 결정을 내렸다. 댐 건설에 반대하는 상류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일은 중앙의 몫이다. 사패산 터널 건설 문제로 외곽 순환고속도로의 건설이 늦어진 것도 역시 느리고 결단력이 없는 중앙정부 탓이다.

중앙이 무능하다면 지방에 권한을 넘겨주는 게 바람직하다. 노무현 정부는 균형발전을 구실로 중앙의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시대 역행적인 일이다. 중국이 각 지방에 권한을 넘겨주지 않고 균형발전을 강조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중국 경제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1990년대 중국에선 지방분권파와 중앙정부파가 논쟁을 벌인 결과 지방정부에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예컨대 중국의 상하이가 아니라 아시아의 상하이로 보자는 것이다.

지난주 청와대는 시장 군수 구청장을 초청해 오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시장 군수들은 부가가치세의 일부를 지방소비세로 넘겨줄 것을 노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 전에 열린 시도지사 회의에서는 노 대통령의 균형발전론과 김문수 경기지사의 국가경쟁력론이 충돌하기도 했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균형발전론에 따라 정부가 지정한 기업도시에는 찾아오는 기업이 적어 한산한 모습이다. 균형발전을 외치기보다는 파주의 경우처럼 성공한 지방이 많이 생겨나도록 하는 게 첩경이다. 중앙이 권한을 쥐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민주개혁세력이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뤄 냈을지는 모르지만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 무능했다”(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는 반성은 하나마나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