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칼럼]스캔들과 비린내

  • 입력 2006년 8월 24일 20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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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스캔들엔 공식이 있다. 일반인의 상식과 가치, 규범에 어긋나는 사건이 불거진다. 권력이 개입되지 않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입 가진 사람마다 수군댄다. 다음 단계는 부인(否認)이나 축소, 은폐 시도다. 폭로가 잇따르고 정치 문제로 번진다. 드디어 특별검사나 무슨 위원회가 나서 진상 규명을 시작한다. 이쯤 이르면 마무리 수순이다.

‘게이트’의 원조인 워터게이트는 이 공식에 맞는 전범(典範)이었다. 32년 전 8월 8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임했다. 단순 강도사건으로 몰려고 했던 스캔들이 터진 지 2년 만이었다.

워터게이트는 차라리 깔끔했다. 정치 스캔들이 모두 이렇게 처리되면 좋겠지만 현실에선 냄새만 풍긴 채 ‘몸통’ 없이 꼬리 내리는 일이 수두룩하다. 2002년 미국을 들끓게 한 엔론 사건도 대통령과의 끈끈함은 물론이고 각료들과의 수차례 전화 통화까지 드러내고도 권력은 무사했다. 엔론 파산과 함께 알토란 같은 퇴직연금을 날린 이들만 억울했을 뿐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횟집인지, 오락실인지도 몰랐던 ‘바다이야기’ 건(件)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일찌감치 게이트는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적잖은 사람들이 비린내가 난다고 느끼는 건 이번 사건이 너무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서다.

‘스캔들의 정치학’을 쓴 시어도어 로위 미 코넬대 교수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깬 사건이 스캔들이라고 했다. ‘노름하는 자식은 두지도 말라’는 옛말까지 있는 우리나라다. 불과 몇 달 새 골목골목 전자 도박장이 들어차 불야성을 이루는 판에 단순한 오류였다니 기가 찰 일이다.

더구나 도박기와 도박장 상품권을 싸고 수십조 원이 불법적으로 움직였는데 권력의 관여가 없었다고 우긴다면, 우기는 쪽이 되레 수상해진다. 뇌물이 오가지 않았어도 누군가 공직을 이용해 정당한 과정 없이 사익(私益)을 챙기는 게 부패이고, 그게 노출되면 정치 스캔들이다.

권력 주변에선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도 평소의 고정관념을 뒷받침하는 스캔들은 일파만파로 번질 뿐이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전에도 독단적으로 권력을 휘두른다고 비판받았다. 작년부터 브라질 정부 여당을 뒤흔든 뇌물 스캔들은 평등을 추구한다는 좌파 정치의 이중성을 드러내 조롱받고 있다. 노 정부는 밑도 끝도 없이 야당에 대연정(大聯政)을 제안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서두르는 등 도박 같은 정치를 해 왔다. 도박 스캔들과 기이하게 들어맞는다.

이 난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부터 정치권이 해야 할 ‘데미지 컨트롤’은 단 한 가지다. 손톱만큼의 축소나 은폐 없이 다 밝히고 처벌하는 일이다. 워터게이트의 후폭풍이 엄청났던 것도 닉슨의 은폐 기도 때문이었다. 문제는 어느 선까지 개입했는지, 어느 선까지 밝혀내는지다. 숱한 정치적 의혹이 그랬듯이 알고 보니 별 잘못 없었다는 결말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사람들도 진이 빠져 정치가 다 그렇지, 냉소에 빠질 게 분명하다. 어디 한두 번 겪어 본 일이던가.

정치 스캔들이 다 파국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화이트워터에 르윈스키 스캔들까지 시달렸지만 지지도는 되레 올랐다. 경제 활황 덕분이다. 지난해 비자 스캔들을 겪은 요슈카 피셔 당시 독일 외교장관이 고(高)실업과 저(低)성장의 책임을 면치 못하고 총선 패배 뒤 은퇴한 것과 대조적이다.

결국 문제는 경제로 모아진다. 노 대통령은 “내가 경제를 망쳤느냐”고 항변했지만 그건 본인 생각일 뿐이다. 노 정부의 정체성에 맞든 안 맞든 출자총액제한도 풀고, 어떻게든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 ‘도박 정부’라는 오명으로 남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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