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신성일을 자유롭게 하라

  • 입력 2006년 8월 1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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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의 애틋한 호소문이 가슴을 적신다. “…남편은 일흔 나이에 앞으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격이 못 미치더라도 처의 처지로, 가족으로서 감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8월 15일 특사에 석방되기를 간곡히 소원합니다….”

왕년의 인기 영화배우 엄앵란 씨가 얼마 전 옥중에 있는 남편을 이번 8·15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며 정치인들에게 보낸 호소문이다. 그의 남편이 누구인가. 1960년대 혜성처럼 등장해 30여 년간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만인의 연인’ 신성일이 아닌가. 1990년대 들어 강신성일이란 이름으로 정계에 진출한 그는 16대 국회의원 시절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 2명에게서 광고물 수의계약 등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1억87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5년과 추징금 1억8700만 원을 선고받고 1년 5개월여째 복역 중이다.

전성기 때의 스타 신성일은 ‘한국의 제임스 딘’ 또는 ‘한국의 알랭 들롱’으로 회자된 문화 아이콘이었다. 1967년 한 해에만 무려 65편의 영화를 찍을 정도였다. 1964년 11월 서울 워커힐에서 열린 신성일 엄앵란 커플의 결혼식은 초청장이 암거래되고 4000여 하객이 몰려들었다. ‘로맨스 빠빠’ ‘아낌없이 주련다’ ‘맨발의 청춘’ ‘만추’ ‘안개’ ‘연애교실’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도시의 사냥꾼’ ‘길소뜸’ 등에서의 그의 빛나는 연기는 한국 영화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의정부교도소에서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성일은 최근 자신을 면회 온 영화계 인사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구속을 앞둔 시점에서 주위 사람들이 잠시 해외에 나가 있으라고 권유했으나 엄앵란을 생각해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하면 엄앵란이 어떻게 국내에서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겠느냐. 엄앵란한테는 늘 마음의 빚이 있다. 나는 징역을 살더라도 엄앵란만은 떳떳하게 활동을 계속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엄앵란은 방송 등 모든 활동을 접었다.

한때 ‘국민배우’ 소리를 듣던 이를 감옥에서 오래 썩게 하는 것은 영화 예술과 배우에 대한 대접이 아니다. 더구나 같은 사안으로 불구속 기소된 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은 집권당 사무총장의 위세로 7차례나 재판을 연기한 끝에 올해 2월 1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80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지금까지 단 하루도 옥살이를 하지 않았다. 또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주고받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면 복권되지 않았는가. 풀려나 장관이 된 사람도 있다. 대중에 대한 기여도로 따지자면 영화배우도 결코 정치인이나 재벌 기업인 못지않다.

광복절을 앞두고 정치권과 재계는 정치자금법 위반과 분식회계 등으로 형이 확정된 정치인과 기업인의 선처를 호소하고 나섰다. 하지만 영화계가 한마음으로 신성일의 구명을 촉구하고 나섰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가 몸담았던 한나라당은 정치적 부담과 불필요한 오해를 염려해 몸을 사리고 있는 눈치고, 영화계는 젊은 실세들이 왕년의 대선배들을 챙기지 않는 콩가루 집안이 된 지 오래다.

신성일과 10편 이상 영화를 찍은 정진우 감독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야기할 때 신성일을 빼놓을 수 없다. 죄가 있더라도 그의 공헌과 나이를 감안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신성일과 엄앵란을 알지 못한다. ‘정치인 강신성일’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배우 신성일’에 대해서는 관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성일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나눈 동시대 대중(大衆)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가혹한 형벌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느덧 칠십 줄에 접어든 백발의 노(老)배우 신성일에게 이제는 자유를 허(許)하라.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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