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여성 1000만 취업의 그림자

  • 입력 2006년 8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살면서 느끼는 고독감이야 남녀를 초월하지만 고독은 본래 남자에게 더 잘 어울린다. 그것은 고래(古來)로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자(妻子)를 동굴에 남겨두고 홀로 사냥에 나선 사나이가 산야(山野)의 한가운데서 느꼈을 고독감을 상상해 보라. 사냥이 현대로 와서는 ‘직업’으로 바뀌었으니 현대 남자들의 고독감은 직업적 고독감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사투를 벌이는 남자들의 외로움은 그 옛날 처자에게 갖다 줄 것을 사냥하기 위해 맹수와 사투를 벌이던 남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날은 어두워 오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때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고독감은 때로 눈 딱 감고 그냥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최근에도 여전히 끊이지 않는 가장들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 먼 옛날 사내들이 느꼈을 절망과 고독이 겹쳐진다. 올해 들어 신문에 난 것만 꼽아도 평균 한 달에 두 번꼴인 가장들의 자살은 하나같이 생활고 때문이다. 실직이나 부도로 경제력을 거세당한 남자들이 때로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을 때 가장의 빈자리는 고스란히 여자들 몫이다.

‘여성 취업자 1000만 시대’라고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여자의 눈물과 한숨’이 있다. 우선 전체 여성 취업자의 절반이 넘는 55.1%(통계청 6월 고용동향)가 임시직이나 일용직에 집중되어 있다. 직종도 도소매업 및 음식 숙박업(34.1%)에 몰려 있다. 인사취업전문기업 인크루트가 최근 조사한 기혼여성의 재취업 직종을 비교해 보면 텔레마케터가 75%나 증가했고, 이어 영업직 37.5%, 유통매장직 25.0%, 생산조립직 12.5%씩 증가율을 보였다.

한국 여성의 급격한 취업률 상승도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이유라기보다 경기불황으로 남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으로 내던져진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여성 취업자 중 40대(263만4000명)가 전체 취업자의 11.2%로 20대 남성(8.2%)과 50대 남성(10.1%)을 앞지를 정도다.

한국사회에서 중년 아줌마들이 동년배 아저씨들보다 상대적으로 일자리 구하기가 쉽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사회적 체면이나 남의 눈 같은 추상적 삶에 익숙한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남의 눈치 안 보고 취업전선에 나간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남자는 써 주는 곳이 없지만 여자는 맘만 먹으면 일할 곳이 많다. 식당에서 요리하고 밥 나르고, 마트 계산대를 하루 종일 지키고, 남의 집 살림 봐 주는 일에 여자들은 나설 수 있지만 남자들은 힘들다.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운전사가 중년의 아줌마였다. “여자 운전사 분을 만나니 반갑다”고 하자 아줌마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남편은 직장에서 잘리고 갈 데는 없고, 생활비는 벌어야겠고, 나라도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저 여자의 행복이란 게 남자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알뜰살뜰 모아 가며 사는 것인데….”

애 낳고 기르는 일만도 벅찬데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2006년 한국의 아줌마들은 이래저래 고달프다. 하기야 남자도 살기 힘든데 여자는 오죽하겠는가.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