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사투를 벌이는 남자들의 외로움은 그 옛날 처자에게 갖다 줄 것을 사냥하기 위해 맹수와 사투를 벌이던 남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날은 어두워 오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때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고독감은 때로 눈 딱 감고 그냥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최근에도 여전히 끊이지 않는 가장들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 먼 옛날 사내들이 느꼈을 절망과 고독이 겹쳐진다. 올해 들어 신문에 난 것만 꼽아도 평균 한 달에 두 번꼴인 가장들의 자살은 하나같이 생활고 때문이다. 실직이나 부도로 경제력을 거세당한 남자들이 때로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을 때 가장의 빈자리는 고스란히 여자들 몫이다.
‘여성 취업자 1000만 시대’라고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여자의 눈물과 한숨’이 있다. 우선 전체 여성 취업자의 절반이 넘는 55.1%(통계청 6월 고용동향)가 임시직이나 일용직에 집중되어 있다. 직종도 도소매업 및 음식 숙박업(34.1%)에 몰려 있다. 인사취업전문기업 인크루트가 최근 조사한 기혼여성의 재취업 직종을 비교해 보면 텔레마케터가 75%나 증가했고, 이어 영업직 37.5%, 유통매장직 25.0%, 생산조립직 12.5%씩 증가율을 보였다.
한국 여성의 급격한 취업률 상승도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이유라기보다 경기불황으로 남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으로 내던져진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여성 취업자 중 40대(263만4000명)가 전체 취업자의 11.2%로 20대 남성(8.2%)과 50대 남성(10.1%)을 앞지를 정도다.
한국사회에서 중년 아줌마들이 동년배 아저씨들보다 상대적으로 일자리 구하기가 쉽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사회적 체면이나 남의 눈 같은 추상적 삶에 익숙한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남의 눈치 안 보고 취업전선에 나간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남자는 써 주는 곳이 없지만 여자는 맘만 먹으면 일할 곳이 많다. 식당에서 요리하고 밥 나르고, 마트 계산대를 하루 종일 지키고, 남의 집 살림 봐 주는 일에 여자들은 나설 수 있지만 남자들은 힘들다.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운전사가 중년의 아줌마였다. “여자 운전사 분을 만나니 반갑다”고 하자 아줌마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남편은 직장에서 잘리고 갈 데는 없고, 생활비는 벌어야겠고, 나라도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저 여자의 행복이란 게 남자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알뜰살뜰 모아 가며 사는 것인데….”
애 낳고 기르는 일만도 벅찬데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2006년 한국의 아줌마들은 이래저래 고달프다. 하기야 남자도 살기 힘든데 여자는 오죽하겠는가.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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