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완배]시장을 거스르면 시장이 버린다

  • 입력 2006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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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12일.

당시 이규성 재무부 장관은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주가 하락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주식 매입에 동원된 한국 대한 국민투신 등 3대 투신사는 정부가 빌려 준 2조7000억 원으로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이 충격적인 조치가 한국 증시 역사상 가장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12·12 증권시장 안정화 대책’이다.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주식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경제에 큰 짐을 안겼다.

투신사들의 주식 대량 매입에도 불구하고 주가 폭락이라는 시장의 도도한 흐름을 막지 못했다. 3대 투신사는 부실의 깊은 늪에 빠졌고, 이들의 몰락은 이후 오랫동안 한국 금융시장의 발목을 잡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에도 금융 자산에 대한 가격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 이번에는 부동산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과 주식 가운데 누가 이기나 보자, 나는 주식에 걸었다”고 했다. 부동산 가격 통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대통령의 발언은 이 밖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어 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부동산 대책을 줄줄이 내놓았다.

그런데도 올해 들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잡으면, 거기서 빠져나온 자금이 증시로 유입돼 주가가 올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는 부동산도 주식과 마찬가지로 경기와 금리에 영향을 받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금융상품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동산 가격 통제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그러나 성공 여부를 떠나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을 외부의 압력으로 끌어내리고 올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거시경제 전문가인 피데스투자자문 김한진 부사장은 “인위적 증시 부양이 먹히지 않는 것처럼 시장의 흐름에 역행해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 하는 것도 성공하기 어렵다”며 “부동산 정책은 불공정거래를 잡아내고 거래가 원활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시장과 가격을 왜곡하는 정부의 어떤 시도도 좋은 결실을 보지 못한 점을 상기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완배 경제부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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